비자발적 퇴사를 하는 시기에 친구 둘기도 한국으로 돌아와 안식년을 가졌다. 둘기와 나는 백수 동지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카페도 테이크 아웃만 되던 추운 겨울. 그나마 덜 추운 정오에 만나 커피를 사서 공원을 걸었다. 해가 잘 드는 의자에 앉아서 몸을 녹였다. 옆에는 비둘기들이 몸을 부풀려 추위를 피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휴 추워. 그래도 이 자리가 제일 따뜻해.”
“둘기야, 우리 너무 비둘기와도 같은 삶이다.”
“와...그러네...구구...구구...예!”
그렇게 비둘기 모임을 결성했고 구호는 ‘구구 구구 예!’로 하였다.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우면 재래시장을 향해 걸었다. 시장은 언제 가도 모든 물건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층층이 쌓인 과일, 반듯하게 적힌 ‘찰토마토 5,000원’, 갓 나온 두부를 투명한 봉투에 넣고 한 번 더 검은 봉투로 착착착 포장해주는 모습. 상인들이 하는 모든 노동은 군더더기 없는 춤사위 같았다. 활기가 대단했다. 나에게 없는 활기여서 볼 때마다 감탄했다.
“선선 엄마 잘 가!”
“응 자기야.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시자구”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인 척 상황극을 마지막으로 횡단보도에서 헤어졌다. 둘기와 하루 만 보 이상 걸었다. 어설픈 상황극에도 호쾌하게 웃었다. 둘기와 만나서 오래 걸을 때 이유 없는 불안이 홀랑 사라졌다. 가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땐 우린 약속한 듯 굉장한 무표정을 하고서 말없이 하늘을 올려봤다.
손끝을 차게 하는 겨울이 가고 따듯하게 등을 쓸어주는 봄이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드디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봄이 되자 우리는 더 성실히 걸었다. 한강을 끼고 합정, 여의도까지 걸었다. 헛둘헛둘 걸을 때마다 생기는 박자가 나의 등을 토닥토닥 쳐주는 것 같았다. 볕 아래 돗자리를 펴고 오래 누워있었다. 눅눅한 마음을 부지런히 말렸다.
둘기는 겨울, 봄을 보내고 여름이 시작될 때 즈음 캐나다로 돌아갔다. 캐나다로 가기 전날 동네 카페에서 만나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쯤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코를 찡긋거리며 눈물을 쏙쏙 집어넣었다. 내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올라탈 때쯤 둘기는 내 등을 때리며
“야 우냐?”
“야 뭐뭐뭐 안울어!”
그리고 버스 창가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나는 사계절 비염인으로서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닌다. 그 모습이 과하게 아련해서 둘이 호쾌하게 웃었다. 30대가 되고 어쩌다 동시에 백수가 되어 운 좋게 친구와 같은 동네에 살며 자주 만나 오래 걷고 많이 웃었다.
둘기와 나는 비둘기 모임 이전으로 돌아갔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사는 일상을 보낸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적당히 소홀하면서. 서늘한 듯 선선한 사이가 되어 다시 어떤 균형을 찾았다. 영원하려나 착각하기 딱 좋게 애매하게 길었던 비둘기 모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