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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Dec 01. 2021

구구, 구구 예!

 비자발적 퇴사를 하는 시기에 친구 둘기도 한국으로 돌아와 안식년을 가졌다. 둘기와 나는 백수 동지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카페도 테이크 아웃만 되던 추운 겨울. 그나마 덜 추운 정오에 만나 커피를 사서 공원을 걸었다. 해가 잘 드는 의자에 앉아서 몸을 녹였다. 옆에는 비둘기들이 몸을 부풀려 추위를 피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휴 추워. 그래도 이 자리가 제일 따뜻해.”

“둘기야, 우리 너무 비둘기와도 같은 삶이다.”

“와...그러네...구구...구구...예!”     


 그렇게 비둘기 모임을 결성했고 구호는 ‘구구 구구 예!’로 하였다.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우면 재래시장을 향해 걸었다. 시장은 언제 가도 모든 물건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층층이 쌓인 과일, 반듯하게 적힌 ‘찰토마토 5,000원’, 갓 나온 두부를 투명한 봉투에 넣고 한 번 더 검은 봉투로 착착착 포장해주는 모습. 상인들이 하는 모든 노동은 군더더기 없는 춤사위 같았다. 활기가 대단했다. 나에게 없는 활기여서 볼 때마다 감탄했다.         


“선선 엄마 잘 가!”

“응 자기야.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시자구”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인 척 상황극을 마지막으로 횡단보도에서 헤어졌다. 둘기와 하루 만 보 이상 걸었다. 어설픈 상황극에도 호쾌하게 웃었다. 둘기와 만나서 오래 걸을 때 이유 없는 불안이 홀랑 사라졌다. 가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땐 우린 약속한 듯 굉장한 무표정을 하고서 말없이 하늘을 올려봤다.   

   

 손끝을 차게 하는 겨울이 가고 따듯하게 등을 쓸어주는 봄이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드디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봄이 되자 우리는 더 성실히 걸었다. 한강을 끼고 합정, 여의도까지 걸었다. 헛둘헛둘 걸을 때마다 생기는 박자가 나의 등을 토닥토닥 쳐주는 것 같았다. 볕 아래 돗자리를 펴고 오래 누워있었다. 눅눅한 마음을 부지런히 말렸다.


 둘기는 겨울, 봄을 보내고 여름이 시작될 때 즈음 캐나다로 돌아갔다. 캐나다로 가기 전날 동네 카페에서 만나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쯤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코를 찡긋거리며 눈물을 쏙쏙 집어넣었다. 내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올라탈 때쯤 둘기는 내 등을 때리며    

  

“야 우냐?”

“야 뭐뭐뭐 안울어!”      


 그리고 버스 창가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나는 사계절 비염인으로서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닌다. 그 모습이 과하게 아련해서 둘이 호쾌하게 웃었다. 30대가 되고 어쩌다 동시에 백수가 되어 운 좋게 친구와 같은 동네에 살며 자주 만나 오래 걷고 많이 웃었다.      


 둘기와 나는 비둘기 모임 이전으로 돌아갔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사는 일상을 보낸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적당히 소홀하면서. 서늘한 듯 선선한 사이가 되어 다시 어떤 균형을 찾았다. 영원하려나 착각하기 딱 좋게 애매하게 길었던 비둘기 모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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