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1.
브런치에 120일 넘게 글을 쓰지 않았다고, 빨리 돌아오라는 애타는 부름을 받았다.
과연 내 독자님들도 나를 브런치만큼이나 기다려주셨을까?
2.
닉네임을 또 바꿨다.
창의성이라고는 없어서 내 이름 말고 뭘로 나를 칭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게임할 때도 제일 어려운 단계가 캐릭터 이름 정하기.
그냥 이름을 쓰는 게 제일 있어 보일 것 같은데 그러기엔 아직 용기가 없다.
3.
그동안 나는 입사 10개월 차가 되었다.
뭘 했다고 9개월이 그냥 갔는지?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남들은 이걸 몰랐으면 하는 마음뿐.
4.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보고 꽂혀서 바로 구입했다.
책을 펴내며, 라는 글이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인데 여기 나눈다.
"...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문학동네의 편집진과 김민정 시인에게 감사한다. 이 놀라운 재능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거나 어쭙잖게만 출간되었을 것이다."
따뜻한 글을 쓰는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언제나 참 먹먹하다.
5.
아니다, 10개월 차에 들어선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그래도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키보드에 열광하게 되었고 부장님 관련 농담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화가 더 많아졌다.
편해진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불편한 사람들,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서른넷을 바라보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극심한 우울감은 여전히, 때때로 찾아오지만 예전처럼 딛고 선 땅이 허물어지는 느낌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중인지 여전히 제자리에서 헛걸음 중인지 알 수 없고
알려는 노력도 무의미하겠지만 현재를 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6.
하지만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은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