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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24. 2023

식당에서 그릇을 떨어뜨린 아내

23.07.24.월요일


우선 오늘은 굉장히 신나는 하루였다. 예정에도 없던 '연차'를 쓰고 땡땡이를 쳤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아주 급작스럽게 연차를 소진하기로 결정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토요일, 일요일 모두 바깥 일정이 있어서인지 뭔가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장난삼아 월요일 하루 더 쉴까? 하는 이야기를 아내랑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못 쉴 게 뭐람? 남들은 아프다고 갑자기 휴가 쓰고 그러는데... 나라고 해서 아프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어젯밤, 팀장님에게 보낼 카톡을 미리 작성하여 '예약메시지'로 전송해두었다.


아주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다. 뭔가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갑작스럽게 업무 과다로 괴로워할지도 모르는 팀원들과 팀장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러나 그것은 스쳐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 또한 일종의 나를 조종하는 '심어진 죄책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권리와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죄책감은 거의 희석되고 오로지 한 단계 나아간 것에 대한 자긍심과 뿌듯함이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늘 오전 8시 쯤 침대에서 일어나 아내의 출근 준비를 도왔다. 백수 시절 그 때처럼, 내가 운전해서 아내를 직장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아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바로 씻고 중앙도서관에 갈 준비를 하였다. 사실 주인공은 중앙도서관보다는 수리산이었다. 일단 비가 온 직후이기도 했고, 또 오늘은 마침 비가 오지 않고 있어 산림욕을 하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은 수리산이든 어디든 가서 피톤치드와 산소를 듬뿍 흡입하고 오리라.


오전에는 그렇게 수리산에 가서 산림욕을 마친 뒤, 오랜만에 홀로 도서관에 앉아 책을 조금 본 다음 도서관 안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였다. 아내 역시 오전만 근무하고 나오기로 하여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아내를 데리러 갔다.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의왕 청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맑은숲공원(?)에 다녀왔다. 청계 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정말 어마어마한 계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꽤 높은 지점까지 올라갔는데, 다시 내려오는 길은 아예 계곡 안 물길을 따라 내려오기로 작정하였다.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물을 가르며 내려왔기에 아직까지도 그 찜질 효과가 발 표면에 남아있는 듯하다.


오늘은 숲에서만 거의 3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코 끝을 스쳐 폐 안과 온몸 구석구석을 훑고 다시 바깥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저 산소의 움직임이란...! 경이롭고 아름답다.


그렇게 기력을 소진한 아내와 나는 처음으로 '훠궈'를 먹으러가기로 결정했다. 둘이 먹으러가는 것이 처음이란 뜻이다.


문제의 그릇 사건은 바로 훠궈 집에서 일어났다. 무한리필이 가능한 뷔페라, 식재료를 추가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가 꼴뚜기를 집게로 집으려는데 미끄러운 탓인지 잘 집히지 않아 나에게 집게를 건넸다. 그러면서 아내는 들고 있던 그릇을 선반 끄트머리에 걸쳐두었는데 그만, 스텐으로 된 선반과 플라스틱으로 된 그릇 사이의 마찰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것인지 그릇은 땅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와장창!!!


깨지진 않았으나, 나는 그 순간 얼어붙고야 말았다. 내 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었다.

아내가 잘못했어. 식당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며 그릇을 떨어뜨리는 실수는 하면 안되는 것이야. 그러니 얼른 네가 수습해야만 해.


그러나 아내는 움직이지 않았고, 내가 그 즉시 바닥에 떨어진 그릇을 주웠다.

그렇게 식재료를 다 담을 때까지 우리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상태로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로 돌아온 뒤로도 한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조금 전 벌어졌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아내는 그릇을 떨어뜨리는 순간 내 얼굴을 보았고, 확 굳어진 내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잘 처리했어야만 한다, 라고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짜증이 났는지 나는 아내에게 설명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나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내는 솔직히 그릇을 떨어뜨린 것이 그렇게 큰 일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에 대해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물론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럼에도 나는 이런 사건이 벌어졌던 것 자체에 대해 매우 놀라고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그것을 적절히 수습하지 않은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서 그 또한 당황스러웠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뭔가가 잘못되어가고있음을 느꼈다. 그 즉시 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아까 그렇게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아내의 말대로 그것을 아내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내가 그 상황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고. 확실히 나는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마치 뭔가 큰 잘못이 저질러진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고, 순간적으로 잘못한 사람을 찾는 내 안의 심판자가 고개를 쳐들었던 것이다!


속상함에 눈물까지 흘리던 아내는 나의 마음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다시 맛있게 훠궈를 먹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훠궈를 한 차례 다 먹은 뒤, 다시 식재료를 가지러갈 떄가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부탁하였다.


"아까처럼 다시 한번 그릇을 떨어뜨려줘"

같은 상황에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연습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아내가 그릇을 땅에 떨어뜨리는 순간 두동강이 나며 깨져버렸다. 아... 그런데 아까와 같은 당혹스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전에 약속된 상황이라 그럴 것이다. 아까와 같은 감정까지 재현할 수는 없던 것이다. 만약 이 시뮬레이션을 효과를 발휘하려면,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릇이 떨어져야만 했을 것이다. 아무튼 시뮬레이션 효과를 크지 않았지만, 나는 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들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행동을 아내가 한다면, 마치 내가 실례를 한 것과 같은 당혹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결과 나는 그 잘못의 책임을 아내에게 추궁하기 시작한다. 비록 이것이 아내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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