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호영 Mar 04. 2024

어떤 집이 당첨될까! (아이슬란드여행 숙소)




여행에서 머무는 숙소를 집이라고 부른다. 물론, 집이 마음에 들 때만 그런 것 같다. 어쩌다 마음에 안 드는 숙소가 걸리면, 그건 그저 곧 잊혀질 숙소일 뿐이다.



레이캬비크에 도착한 첫날은 저녁에 도착해 잠만 잘 일정이라 저렴한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그럼에도 비싸다는 사실은 아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것이다.) 시내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스노클링 하러 갈 계획이었다. (아이슬란드 빙하가 녹은 물속 스노클링을 기대하시라!)



그런데 아이슬란드 도착 후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한여름이었고, 긴팔을 껴입었지만,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가볍게 핫도그를 사 먹고 집으로 (아니, 숙소로) 향했다.



미처 몰랐던 사실은 계단을 내려간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고, 누가 봐도 지하 창고를 개조한 모양새였으며, 침대 하나와 싱크대와 세면대가 있었는데, 아니 그 세면대 바로 옆에 그러니까 침대 바로 맞은편에, 변기가 있는 게 아닌가? 개방형 화장실이 있는 숙소도 있었나? 나와 제이는 다음날까지 화장실을 가기 위해 한 명이 숙소 밖에서 기다려줘야 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웹사이트에는 분명 이러한 설명이 없었다. 사진을 봤지만, 당연히 화장실은 화장실인 줄 알았지, 누가 침대와 마주 보고 변기가 있다고 생각할까!



지하 숙소인 줄도 미처 몰랐다. 여름 레이캬비크 숙소 최소 20만 원 이상부터 시작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날 몸져누워버렸다. 긴 비행의 끝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조금 맞고 돌아다녔다고 감기 몸살이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챙겨 온 약을 먹었고, 옷은 벗기는커녕 더 꽁꽁 껴입고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제발 내일 아침에 아프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보통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그런가 하면 사랑스러운 집의 기억도 떠오른다. 그날은 스노클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자동차 사고가 났던 날이다. (그렇다, 바로 다음 날이다. 사고 이야기도 기대하시라!) 사고 탓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어쩌다 보니 그토록 사랑스러운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였다. 가장 해가 길다는 아이슬란드의 여름에 백야를 제대로 느끼며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갔다. 작지만 포근한 소파가 놓여있고, 그 앞에는 탁자가, 그 앞에는 네모난 통창을 통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펼쳐졌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보라색 꽃에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고, 저 멀리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지붕을 보며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후. 집에 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저 폭신한 침대에 얼른 몸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은 자꾸 창밖으로 향했다. 창문 자체가 살아있는 액자였다.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밤 자정을 넘어가는데, 하늘은 여전히 밝았다. 노을이 지려는지 붉고 푸르른 색을 동시에 만들어냈다. 아이슬란드에서 여름에만 볼 수 있는 보라색 꽃의 이름은 루피너스(lupinus)이다. 군락을 이루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도 멈춰 서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 사고가 나고, 또 비를 맞고, 꼴은 엉망인데 자정이 넘어 꾀죄죄한 모습으로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고 있으니, 제이가 말했다.



“에린, 원피스 가져오지 않았어? 갈아입고 사진 찍어봐.”



“으응? 귀찮은데 …”



귀찮다고 말은 했지만, 옷을 갈아입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숙소에서 잠만 자고 가기는 아쉬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루피너스 군락이 앞으로 맞이할 우리 집 앞에 피어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원피스로 갈아입고는 그야말로 꽃밭을 뛰어다니며, 카메라 앵글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를 반복했다. 낯선 땅에 도착한지 하루만에, 꼬박 몸살을 앓고, 차가운 물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차 사고가 나서 비를 맞으며 굶고 와서는 자정에 이런 풍경을 만날 줄이야!



“옷 갈아입고 사진 찍길 잘했지?”



“그러게.”



조금 귀찮고, 피곤하고, 힘든 하루와 이틀을 보내고도 남은 에너지를 쥐어 짜내 그때 찍은 사진은 아이슬란드 여름에 머문 집을 기념할 가장 예쁜 사진 중 하나로 남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름다운 딱 하나만 뽑지 못해요. 자연 속에 덩그러니 놓인 아름다운 집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게 와주었거든요.)
















결이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올리고 있어요.

아이슬란드 여행 계획이 있다면,

블로그에도 놀러 오세요! •ܫ•





이전 01화 아이스크림랜드 아이슬란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