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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r 25. 2024

잠 처방전

백야와 잠





어느 드라마에서 심리학에 능통한 주인공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눈을 감고 누워서 생각해 보세요.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 단어들을 눈동자 뒤쪽으로 끌어모으세요. 그리고 하나씩 지우는 거예요. 까맣게 덧칠하세요.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맣게, 먹색으로, 그렇게 전부 다 지워 보세요."


생각이 많은 나는 그날 밤 당장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보았다.


일단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을 단어로 만들었다. 그 단어들을 눈동자 뒤로 모은다는 생각으로 그러니까, 머리 뒤쪽으로 단어를 보내버렸고, 하나씩 지워 나갔다. 까맣게, 붓으로 덧칠하듯 까맣게, 보이지 않도록. 그렇게 하나하나 지워가는 사이 잠이 든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생각했다. ‘아, 잠이 들었구나.’ 평소에 잠들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귀마개는 잠옷 바지 주머니 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곤 떠올렸다. 내가 만든 단어들을. 어떤 생각들을 모았는지. 어떤 생각들을 지웠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다, 주로 걱정하는 것들은. 결국 나중에는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머릿속 한편을 내어 줄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것들.



그런 쓸데없는 것들은 여행 중에는 대부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행이라는 시간,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은 느리고 또 빠르게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일상은 이내 여행이 된다. 몸이 조금 무겁고,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아도, 창밖을 바라보며 낯선 곳에 있다는 걸 체감한 순간 괜찮아,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니까. 하고 생각한다. 나지막이 소리 내어 말해본다. “나는 여행 중이야.”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해가 길어서 자정이 되어도 환했다. 잠들기 전 창밖을 보다가 잠옷을 입은 채 뛰쳐나가기도 했다. 길가에 고양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에게 다가와 발등에 몸을 비벼댔다. 아이슬란드 고양이는 유독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 앞에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실없이 조금 더 행복해지곤 했다.



해가 길다 보니 하루의 시작도 빠르다. 아침 일찍부터 하이킹을 시작하거나, 먼 도시를 목적지로 삼아 운전을 하거나, 더 오래 걷고 더 많이 보느라 밤에는 유독 나른했던 것 같다.


여름 아이슬란드의 밤은 그랬다. 창밖에서 새어들어오는 빛도, 동물 울음소리도, 옆에서 바스락거리며 뒤척이는 소리에도, 모두가 무사하고 평온할 뿐이었다.








*아이슬란드 숙소에는 대부분 암막 기능이 있는 블라인드나 커튼이 달려있어요. 그럼에도 온전한 어둠을 만들지는 못하기에, 캠핑카 여행 및 캠핑을 즐기는 여름 시기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간다면 수면 안대 준비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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