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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Apr 01. 2024

코 끝을 찌르는 냄새

아이슬란드 유황









첫날 아파서 잠들었던 에어비앤비 숙소(기억하나요?)에서의 고충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냄새. 세면대에서 세수하려고 허리를 숙였는데, 우웩하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하수구 냄새가 이렇게 심해도 되는 건가? 세수할 때는 숨을 참았고, 양치질 할 때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은 채 입을 헹궜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어쩌면 이게 바로 아이슬란드 특유의 유황 냄새일까? 공항에 도착하면 매캐한 유황 냄새에 킁킁거리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하 온천수를 끌어다 쓰는 숙소의 화장실에서도 유황 냄새가 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냄새가 이렇게 심하다고? 첫날 이후 이렇게 심한 냄새가 나는 숙소는 경험하지 않았으므로, 그건 역시 숙소의 문제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가끔은 미세하게 불쾌한 냄새가 느껴질 때는 있었다. 그런 물은 미끌미끌하기까지 했는데, 피부에 좋은 온천수라고 했다. 실제로 샤워를 마친 후에는 피부가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는 화산활동이 잦다. 덕분에 지열 온천이 발달했고, 지하 온천수를 끌어다가 수돗물로 사용한다. 유황을 함유한 물이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과거에 비해 최근에 지어진 숙소들 혹은 리모델링한 숙소들은 냄새를 확 줄였다.










유황 냄새의 진가를 경험한 건, 흐베리르(Hverir)라는 거대한 지열 지대에 갔을 때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시큰둥했다. '지열 지대가 뭐?'라고 생각했다. (이런 비슷한 생각 예컨대, '그래서 폭포가 뭐?' 같은 시큰둥한 마음은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내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가 바로 꼬리를 내리곤 했다. 자연을 감상하러 왔지만, 굳이 관광지를 가고 싶지 않다는 심통이 생겼던 거다. 이내 사람이 몰려드는 관광지는 이유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관광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자연 속 신비만이 있을 뿐이다.)


운전하며 흐베리르 지역으로 다가갈 때 이미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래서 아이슬란드를 우주 같다고 하는구나. 드넓은 땅, 사막같이 펼쳐진 땅 곳곳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황무지 같은 땅은 회갈색을 띠고 있다. 허연 연기가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모습은 흡사 거대한 지구 생명체가 숨을 쉬는 듯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코끝을 찌르는 유황 냄새가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냄새 때문에? 당장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궁금한 건 바로 구글링을 해보는 편이라 흐베리르와 두통과의 연관성을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흐베리르 지열지대에서 올라오는 연기 즉, 가스로 인해 두통 및 어지럼증이 심지어 며칠이나 지속될 수 있으니 주의하란다. 화산 폭발 직후, 화산 지대에 용암을 보러 가는 관광객들을 막는 이유와 같았다. 화산지대에서 나오는 가스의 주성분으로 아황산가스가 포함되는데 이는 생물에게 유독하기 때문이었다.



흐베리르는 현재 화산활동은 없지만, 지난 천 년간 무려 100회 이상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유황을 비롯한 부산물이 지속적으로 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활동이 이어지는 곳을 지열 지대라고 부른다.








드넓은 흐베리르 지열 지대는 가히 놀라운 풍경을 자아낸다. 어린시절 만화에서 본 마녀의 수프처럼 끓고 있는 땅, 세찬 압력으로 튀어 오르는 물줄기,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녹아내린 광물이 만들어낸 노랗고 붉고 푸른 색깔의 흙. 이 모든 색감의 조화에 수증기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에 더해진 달걀 썩은 냄새 덕분에 이내 몽롱해지고 만다. 안타깝게도 오래 머물기에 어려운 곳이지만, 들러보자. 신비롭게도 사진을 찍으면 어찌하여 그토록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지역인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눈으로 보는 광경도 놀라웠지만, 카메라에 담긴 흐베리르의 색감은 마치 아름다운 우주 행성을 떠올리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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