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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r 18. 2024

실프라 신비에 휩싸인 차 사고

아이슬란드 렌트카 여행



 

스노클링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운전대를 잡았는데,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반대편 길로 안내했다. 싸한 느낌이 뒷머리를 강타한다. 뭔가 이상했지만, 뾰족하게 날아온 촉을 결국 무시해 버렸다. 둘째 날이지만 실질적인 여행 첫날이고, 아마 시차 적응이 채 안되었을거다. 아침부터 빙하 속에 몸을 던진 후라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가이드가 챙겨준 따뜻한 코코아도 한 잔 마셨고, 초코바로 배도 채웠다. 단지,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정신도 헝클어지고 말았던것이다. 잘 가다 말고, '갑자기' 반대편으로 안내하는 차 GPS를 따라 차를 돌렸다. SUV 차량이 들어서기엔 턱없이 좁은 길 같았지만, 지름길이 있을 거라고 철저히 믿었다.


 평소 제이는 미리 구글맵으로 전체 루트를 점검하곤 한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차량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했다. 우린 둘 다 그 흔한 별자리 운 같은 미신에 관심이 없지만, 그날만큼은 뭔가에 홀린 게 분명했다.

 길 입구에는 공사하다만 듯한 작은 지게차가 서있었다. 길이 좁긴 하지만, 찻길이 맞긴 맞나보다 하고 얕은 안심을 했다. 그런데 길은 어째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좁아졌다. 다시 뒤로 나갈 방법은 없었다. 왼쪽으로는 드넓은 호수로 이어진 낭떠러지였고, 오른쪽은 얕은 산 지형이었다. 나무와 바위가 번갈아 서있었기에 오른쪽으로 붙으면 바위에 차가 꿀렁이고, 왼쪽으로 붙으면 물 속으로 빠져버릴 것만 같아 소리를 질렀다.





"악, 어떻게 해! 이러다가 물에 빠질 것만 같아. 악! 나뭇가지에 긁히겠어! 어떻게 하면 좋아. 이거 길이 아닌가 봐. 무서워! "


 무서워진 나는 운전하는 제이를 옆에 두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었다. 제이는 조금만 더 가면 큰 길이 나올 거라며, 느긋하게 자기 암시를 걸고 있었다.

 길은 점점 더 좁아졌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길이라고 여겼을 때쯤 차를 멈춰 세웠다. 뒤돌아 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꾸역꾸역 멀리도 왔다.


 제이는 차를 돌려보겠다고 했다. 길 오른쪽은 약간 경사진 바위였는데, 그 바위를 밝고 후진했다가 유턴해 보겠다는 작전이었다. 도저히 각도가 안 나왔다. 그렇다고 발만 동동구를 수만도 없다고 생각한 제이는 과감히 유턴을 시도했다. 

'부릉 부르릉!'








빠져버린 왼쪽 바퀴 - 겨우 살린 오른쪽 바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는 후진에 실패하고 처참히 미끄러졌다. 왼쪽 앞 바퀴가 경사진 길 아래로 푹 빠져버렸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침착해지자. 제이는 한 번 더 후진을 시도해 보고 싶어 했지만, 극구 말렸다. 그러다가 오른쪽 앞 바퀴마저 빠져버리면 차가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영영 되돌릴 수 없는 길로 갈터였다.


 정신을 차리고,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의 놀란 목소리를 알아챈건지, '다친데 없냐'고 묻는 직원 목소리를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기술자와 견인 차를 보낸다고 했다. 견인 차가 과연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기나 한 건지 궁금했지만, 알아서 해줄 것이다. 이제부터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근처에 별장으로 추정되는 집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쯤 흘렀을까. 커다란 비닐봉지를 든 별장 주인이 다가와서 '왜 이곳으로 차를 끌고 들어왔냐?'고 물었다. 차 GPS를 따라왔다고 했다. 핀잔을 받을까봐 잔뜩 긴장했는데, 위로와 함께 음료수를 하나 건네주었다. 화장실도 쓰게 해주었다. 집구경도 시켜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 대해 조금 안다고 했다. 그의 핸드폰으로 사진도 같이 찍으며 긴장이 풀어질 무렵, 기술자가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생각지도 못한 다음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거대한 국립공원의 일부 지역이었다. 자연을 중시하는 북유럽 국가 특히 아이슬란드에서 국립공원을 해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는 걸 뜻하기도 했다. 우리는 자연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차가 되돌아나가는 길에 분명 조심해야할 것이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을 불러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상의를 하자고 하셨다. 

 기술자는 길 입구에 견인차를 세워두고 왔다고 한다. 그가 타고온 차는 힘이 센 슈퍼지프 차량이었고, 벼랑 끝에 앞 바퀴가 빠져버린 차를 끌어올릴만큼 충분한 힘이 있었다. 두꺼운 밧줄로 차를 연결했다. 한 번의 시도로 차가 끌려오지 않아서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른다. 부릉부릉 엔진 소리를 내는 슈퍼지프와 징징 헛 바퀴 돌리는 우리 차량을 번갈아보다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다행히 차는 끌어올렸다. 이 길을 빠져나갈 방도는 오직 후진으로 되돌아가는 방법뿐이었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을 기다리느라 또 다른 한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추위가 느껴지는 듯했고, 축축한 습기가 발끝으로 타고 올라왔다. 비가 내리는데도 윙윙거리는 벌레 떼가 주변을 맴돌았다. 오늘 하루를 망쳤다는 패배감, 국립공원에 피해를 준 것만 같은 미안함, 피해를 입힌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이유로 처벌같은걸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같은 감정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뒤늦게 국립공원 관계자들이 도착했다.걸어온 모양이다. 그들 역시 친절하게 '괜찮은지'부터 물어봐 주었다. 왜 이 좁은 길로 들어왔느냐, 자연을 훼손시킨 건 아니냐, 따위의 질책 혹은 그런 눈빛조차 건네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웃어보였다. 우린 최소한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영영 못 잊을 추억을 남긴거라며 농담을 건네주었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후진으로 길을 빠져나간다는 계획에 동의했다.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나와 제이는 기술자의 슈퍼지프 옆자리에 올라탔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우리 차를 운전했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후진으로 길을 빠져나오는데 소요된 약 30분간, 압축된 긴장으로 인해 나는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때 왼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발견한 아름다운 호수의 광경이란. 쿵쾅거리는 심장과 고요하기 그지없는 호수의 대비가 오묘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좁은 길, 후진으로 탈출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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