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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자족하지 않는 삶

by 이상옥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순간 추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알 수 있음은 오직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선함을 알 때 악함에는 형체가 생긴다

선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없음이 있음 속으로 스며들면

있음의 없음이 사방에 자리하게 된다

가벼움과 무거움은 상대적으로 나타나고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온다

뒤도 앞이 있어야 그다음에 깨어난다

소리와 침묵은 화합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그 말에 따라 행해진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무위로써 일을 처리한다

- 도덕경 2장 -




70~80년대 우리나라 소설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이문열’이다. 그의 단편 ‘젊은 날의 초상’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삶의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논의할 생각은 없으나, 그의 소설은 시대적 아픔과 고통을 대변해 왔다. 1988년에 쓴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월드스타 ‘강수연’과 청춘스타 ‘손창민’이 열연한 영화는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첫사랑과 재회하지만, 그녀의 허영과 사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살해하고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요약되는 영화에서 왜 제목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일까?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날개가 있다면 추락하다가도 다시 날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결국은 추락을 하게 되고, 날개도 없는데...


[인간의 욕망과 허영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이 빚어낸 비극을 극화했다]


추락은 어느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날개가 있을 경우에 추락은 더 충격이 크고 깊다. 우리는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을 인식한다. 아픈 사람이 있으므로 건강하다고 느낀다. 굶주림을 알기에 배부름을 느끼고 피로함이 존재하기에 휴식의 축복을 느낀다. 젖은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젖는다. 오르막길은 내리막길이 될 수도 있고 원의 시작점은 그것의 종점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체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부분은 전체에서 나온다.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필멸하는 자는 불멸이고 불멸하는 자는 필멸이다. 깨어있는 것은 자는 것이고 젊은 것은 늙은 것이다.


국내외 안팎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혼란스럽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국민을 대상으로 계엄을 선포하여 내란죄로 체포위기에 놓여있고, 무안공항에서는 철새때로 인해 179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되었으며, 멀리 미국에서는 천사의 도시가 악마의 바람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다. 초유의 대통령 체포 사태를 만든 것은 공적인 용도로 주어진 권력을 사적인 목적으로 쓰려는 개인의 욕심에서 발현되었고, 무안공항의 참사는 애당초 철새때가 활발하게 서식하는 습지에 무리하게 공항을 만든 무모함이 원인이며,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산불은 자연의 생태계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개발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조작한 인간의 오만과 욕망이 원인이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안타깝고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면 쉽게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원인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심각한 위협이 나한테 직접 닥쳐올 때까지 지각하지도 해결책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16세기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 1세는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이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카루스가 주인공이 아니다. 이카루스에 대한 신화는 많이 들어봐서 알 것이다. 이카루스는 크레타의 미노스의 왕에게 미로를 만들어준 유명한 건축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미노스 왕이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미궁에 가두고 만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를 미궁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커다란 날개를 만들어서 밀랍으로 날개를 붙였다. 그리고 아들에게 바닷물에 날개가 젖지 않도록 바다 가까이 너무 내려가지고 말고 태양열에 밀랍이 녹지 않도록 너무 높이 올라가지도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이카루스는 높이 날아오르는 성취욕에 취해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밀랍이 녹으면서 바다로 추락해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욕심에 대한 절제와 만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이란 제목으로 그린 브뤼헐 1세의 그림에는 이카루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 브뤼헐 1세 / 1956년]


아니 그림의 오른쪽 아래 가장가지에 물 밖으로 튀어나온 이카루스로 추정되는 다리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카루스가 바다로 추락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 것이 다이다. 이미 하늘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 이카루스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 그림이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일반 사람들을 나타내는 폴랑드르 속담 “그리고 농부는 계속 쟁기질했다”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카루스는 날개를 잃고 물에 빠졌지만 배들은 나아가고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을 게 분명한 근처의 어부는 그물을 끌어 올릴 뿐이다. 농부는 밭에서 ‘계속 쟁기질하고’ 양치기는 바다를 등진 채 지팡이에 기대어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다. 파도는 계속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하늘은 고요하기만 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세상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 죽음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절대적인 외로움이다. 최후의 운명을 마주한 순간 완전히 혼자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배신한다. 극진하게 아끼고 보살피건 방치하고 나 몰라라 하건, 언젠가 우리의 육신은 우리를 배신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날개를 달지 않으면 떨어져 추락할 일도 없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욕심으로 인한 절망과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며,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개발하지 않으면 그로 인한 악마의 희생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지 않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단련하고 수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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