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작가의 비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1900년대 초반까지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만 먹는 게 일반적이었단다. 그런데 발명왕 에디슨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 이유를 '하루 세끼를 먹어서'라고 답한 이후로 사람들이 너도나도 세 끼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이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본인이 개발한 전기 토스터기를 많이 팔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루에 8끼를 먹는 사람이 있다?
시간은 금이다. 세상 모든 곳의 시간이 금이라면, 방송국의 시간은 다이아몬드쯤 되는 듯하다. 모든 맛집 프로그램이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프로그램은 지역을 우선 선정한 후 맛집을 찾기 위해 직접 답사를 떠난다. 빠듯한 제작 기간과 넉넉하지 않은 제작비 때문에 주어진 시간은 단 2박 3일. 그 안에 네다섯 군데의 맛있는 (그리고 음식에 특징도 있으면서 프로그램과 콘셉트도 맞고 어느 정도 경력도 있어야 하고 사장님이 방송 출연도 하고 싶고 거기에 레시피 공개도 가능한) 식당을 찾아야 한다. 맛집 프로그램 섭외가 쉬울 거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거절하는 식당이 수두룩하다. (도대체 왜 섭외가 안 되지? 하고 우울해하다가도 '너 만약 우리 프로그램에서 섭외 들어오면 할 거야?'라고 물어보면 제작진 아무도 안 할 거라카더라...) 확률로 따지면 다섯 집을 방문했을 때 네 집 정도가 맛이 떨어져서 자체 탈락하거나 섭외를 거절하니까, 성공 확률은 20%? 결국, 2박 3일 동안 너 다섯 개의 식당을 섭외하려면 하루에 8군데 정도를 방문해 맛을 보고 나름의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루에 여덟 끼를 먹는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 부러움이다. 안다. 먹는 것만큼 사람에게 쉽게 행복감과 충만감을 주는 행위가 어디 있으랴. 동료 작가가 '나 맛집 프로그램해'라고 했으면 나 역시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1일 8식은 미친 짓이다. 수많은 선후배 작가들이 위염과 장염을 달고 프로그램을 떠났다. 내년이면 맛집 프로그램만 4년 차가 되는 나 역시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위와 장이 쉴 틈을 줘야 하는데, 아침 9시쯤 일어나 저녁 7시가 넘을 때까지 소화기관이 거의 한 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내부적인 문제 외에도 너무 배가 불러서 혹은 다음 식당에 가야 하는 이유로 맛있는 음식을 입에 더 넣지 못하는 것(전형적인 돼지의 관점), 배부른 상태에서 맛을 제대로 느낄 새가 없는 것 또한 잔인한 일이다. 반찬과 메인 요리를 맛보고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을 지를 분석해야하다보니 먹는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다. 남기고 가는 음식을 보며 실망스러운 표정의 사장님을 보는 것도 가슴 아프다. 오 신이시여, 왜 인간은 하루에 세 끼밖에 못 먹는 건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8끼를 먹는 강행군에 불평하는 작가는 없다. 진짜 맛있는 집, 진짜 정성을 들이는 집을 방송에 소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맛에 굉장한 정성까지 더해진 음식점이 섭외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 집은 방송에 나간 후까지 반응이 좋기 마련이다. 실제로 2년 전 찍었던 집인데 아직까지 캡처되어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곳도 있다. 인터넷의 파도를 타다 우연히 그 글을 발견하면 언제든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리며 식도염이 싹 낫는 기분이랄까. 아마도 그런 맛으로 오랫동안 이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한 집을,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는 행복감.
여러분이 맛있게 드신 그 집, 제가 찾고 제가 먹어보고 제가 섭외한 집입니다! 방송에 나온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면, 한번쯤 저를 떠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