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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꿉꿉할 때 이 영화를 보세요.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추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by yedy

일과 사람에 치여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다시 책을 펴고 혹은 노트북을 켜고 나만의 취미 활동에 집중했던 시간들은 먼 과거처럼 여겨지고,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 앉아 가벼운 책 한 권조차 들기 힘들 만큼 무기력한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잠만 자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무엇도 할 수 있는 힘과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나의 상태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은 이제 익숙해질 만큼 충분히 해서 어렵다는 느낌이 없는데, 아마도 사람이 문제였구나 싶었다. 마음과 정신을 둘 곳이 없으니, 배가 고프지 않은 데도 습관처럼 입에 음식을 넣는 날이 이어졌다.


나의 소울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이럴 때는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조차 짐이 된다. 오래 전 읽었다가 좋았던 기억이 있었던 소설집을 꺼내들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비유하자면 체력과 마음의 위안까지 한 번에 가져다주는 소울푸드(Soul Food)를 다시 꺼내야 한달까. 그렇게 다시 꺼내 본 나의 소울푸드, 아니 소울영화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Visages Villages)>이었다.


agnes-varda-jr-french-cinema-brief-milestones-web.jpg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 안타깝게도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이미치 출처 : Time Magazine)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프랑스 영화 중에 괜찮은 영화를 하나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늘 추천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 영화는 철학적이고 난해하다'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타파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누구나 한 번 보면 정말 행복해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다큐멘터리 장르로, 프랑스 현대영화의 한 축을 그은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33살의 젊은 사진작가 겸 거리예술가인 'JR'이 프랑스의 전역을 누비벼 각 도시와 마을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전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거리예술가 JR의 작품 (이미지 출처 : bluecanvas.com)
the-secret-of-the-great-pyramid-jr-louvre-design-architecture-installation_dezeen_2364_hero-852x479.jpg 거리예술가 JR의 작품 (이미지 출처 : www.dezeen.com)


평범한 일상과 잊혀진 역사를 예술로 치환하는 영화

흑백사진을 즉석에서 큰 종이로 인쇄할 수 있는 포토트럭을 타고 이 두 명의 아티스트는 프랑스의 크고 작은 마을들을 거치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지나 온 시간들을 거대한 사진예술로 풀어낸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없어질 위기에 처한 탄광촌을 지키는 노동자의 후손들, 동료 없이 넓은 농장과 커다란 창고를 홀로 지키며 일하는 농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보다는 염소의 뿔을 자르지 않고 지키며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아는 염소농장의 주인들, 그리고 정유회사에서 2교대로 일하는 유쾌한 노동자들은 바르다와 JR의 포토트럭을 만나 거리예술의 일부가 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000709538ms.pn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002544229ms.pn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가 멋진 이유는 아름다운 대사와 복잡한 연출 없이도, 바르다와 JR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지는 애정과 존경을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생생하게 전해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얼굴과 유쾌한 몸동작을 거대한 사진으로 인화해 예술로 치환하는 장면들은 백 마디 대사보다 더 큰 힘을 보탠다. 더불어, 영화 촬영 당시 88세의 노감독 바르다와 33살인 젊은 아티스트 JR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영화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누벨바그의 거장이자 산 증인인 바르다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젊고 세련된 감각과 소녀다운 감성을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다. JR은 이 거장 감독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때로는 바르다의 동네 친구처럼, 때로는 말 안 듣는 손주 같은 모습을 보이며 바르다의 훌륭한 파트너로서 영화를 완성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000319242ms.pn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000321569ms.pn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누구를 만날 때마다 그게 늘 마지막 같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영화의 말미다. 바르다가 영화를 시작한 시절부터 오랜 친구로 지냈던 '장 뤽 고다르'의 집을 찾아가는데, 고다르는 약속과는 달리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답게 바르다와 JR을 바람 맞힌다. 이 장면은 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순항 중이던 바르다와 JR의 잔잔한 영화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는 것 같다. 고다르에게 바람 맞고 서운한 감정을 좀처럼 숨기지 못하는 바르다를 위로하며 JR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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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다르는 당신의 영화적 서사를 깨뜨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내 영화가 아니야. '우리'의 영화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002805541ms.pn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005342443ms.pn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람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일상의 평범한 순간에서 소중한 것들을 포착해 다시 조명하는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통해 꿉꿉한 마음 속 장마를 걷어내보길 바란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네이버영화에서 시청할 수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예고편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6bCFiczfp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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