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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Nov 22. 2020

둘째가 생겼다

의식의 흐름대로 표출한 글이니 알아서들 피하시오.


 브런치를 잊고 지내는 날이 더 많은데, 논문을 쓰며 적어둔 글들을 꾸준히 읽으시는 분들이 계셔서 종종 뜨는 알람에 깜짝 놀란다. 지난 몇 달 새로운 대학원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영어 공부 삼매경이었는데 최근 한 두 달은 심하게 삐걱거렸다. 제목에 밝혀두었듯, 둘째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첫째는 결혼 후 2년 만에 생겼다. 신혼 기간을 가지고 싶어서 처음엔 조심하긴 했지만 후반부에는 아니 왜 안 생기지? 싶어 은근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것이 이렇게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구나 깨달을 새도 없이 둘째가 또 생겼다. 둘째는 정말이지 계획에 없었고, 신혼 2년보다 더 조심했던 나날들이었는데 팔자란 그런 건가 보다. 몇 달 전 아는 분을 따라 생전 처음으로 철학관을 갔는데 내게 아이가 둘이란다. 내가 그럴 리 없다고 팔짝 뛰었지만 두 살 터울이 될 거라고 콕 집어주며 그분이 말하길, '어떻게든 피임하시겠다면야.. 그런데 말이죠,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사주팔자를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켜보시죠.'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어쨌든 결국 그분의 말대로 두 살 터울로 내게 찾아와 줬다. 사실상 연년생이나 다름없는데, 첫째가 연말생이라 기가 막히게 결론적으로 두 살 터울이 된 것이다.


 지금은 꽤나 침착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지만, 지난 두어 달 동안은 큰 멘붕을 겪었다. 나는 사실 육아보다 임신 기간이 더 힘들었다. 입덧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첫째랑은 비교도 안되게 더 빡센 입덧이 찾아왔다. 입덧 약도 소용이 없으니 공부고 나발이고 눈물 콧물 짜내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사는 중이다. 마음 아픈 건 첫째라는 존재다. 첫째도 아직 어린 아기인데, 엄마가 침대랑 한 몸이 되어 있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게다가 아들 같은 딸이라 몸으로 놀아주고 들고뛰고 난리를 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나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는 건 남편이다. 사실 나는 정말 내 남편을 만나지 않았으면 비혼 비출산이었을 거다. 남편이 침착하게 집안일이며 육아며 잘 해내 주고 있다. 그 와중에 내 공부 스케줄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이 안타까워 계속 더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애쓰고 있다. 정말이지 요즘에 느끼는 이 전우애는 남녀 간의 알량한 사랑의 깊이랑 다르다. 그저 스파크 튀는 그럼 썸이니 뭐니 하는 것들과 차원이 다르다. 아 정말 이 사람은 한 존재로서의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사랑해주고 있구나를 온전히 느낀다. 그러니 둘째가 생겨도 이 사람의 아이라면, 하고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 강조하건대, 입덧과 무기력증. 지금도 남편은 아이와 씨름하며 공부를 하라고 하고 있지만 나는 노트북을 켜고 주절주절 하소연을 써 내려간다. 도저히 암기도 안되고 활자도 눈에 안 들어오고 죽을 맛이다. 여기저기 다시 공부 시작한다고 떠들고 다닌 주둥이가 원망스럽다. 어찌나 공부가 안되는지 미치고 팔짝 뛰겠다. 이 몇 글자 치는 동안에도 수십 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래도 이번이 내 인생 마지막 임신이라는 강한 의지로 참아내고 있다. 


 이제 애 둘 엄마이니, 조금 더 앓는 소리를 내며 공부를 하게 될 것 같다. 징징 짜대면서도 끝까지 해낼 것을 믿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늘 남들보다 모든 성취가 빨랐지만, 막상 그래서 뭐 지금 더 특출 나게 좋은 게 있나? 그냥 애 둘 엄마가 됐다. 인생이 기를 쓰고 힘줘가며 산다고 해서 열심히 잘 산 게 아니더라. 그냥 흐르는 대로 맡겨둬도 된다. 안간힘을 쓰든 안 쓰든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이번 임신으로 몸은 죽을 것 같지만, 역시나 팔자는 거스를 수가 없구나 싶어 너무나 마음이 편해져 버렸다.

 될 대로 되어라.

 내가 애가 둘이든 뭐든, 그저 꾸준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테니. 나는 이번 생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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