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독일어 교과서(장하구 전 종로서적 회장 저 feat. 장기하)
이제는 소장 희귀본 공개 하나 해야겠지요?
말로만 컬렉터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아둔 희귀본이 있긴 한 것인지 궁금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희귀본을 모으기 시작한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나름 경매로 몇 권 낙찰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무작정 낙찰받고 뒤늦게 컬렉터 분들의 책과 자료를 살펴보며 공부하다 보니,
의외로 고미술이나 골동품 컬렉터 분들이 소장품 공개를 꺼려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자랑하고 싶어 죽겠는데,
왜 다들 모든 컬렉션을 공개하지 않을까?
거기서 의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네, 초보 컬렉터니까 저는 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뭔지 제대로 알게 될 때까지 섣부르게 행동하지 말자~ 하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태 제가 소장한 것들을 어디에도 올리지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몇 권은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일단 가장 저 답지 않게(?) 낙찰받은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왜 저 답지 않냐면, 제 원칙은 영어와 한글, 즉 제가 읽을 수 있는 책만 모은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고서 수집에 있어 한자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어 곧 공부를 시작할까...합니다.)
아무튼 오늘 처음 공개하려는 책은
<도이취말교본> 이라고 하는 독일어 교재입니다.
초판은 무려 1948년 한국 전쟁 이전이고
제가 낙찰받은 것은 개정 5판으로 1957년도 책입니다.
초판에 비해서 분명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또한 고서 모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은 신생아 수준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57년도에 독일어 교재를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
도대체 저자가 누구란 말인가!에 꽂혔습니다.
장하구 저자에 대해 살펴보니, 놀랍게도 가수 장기하의 할아버지라고 합니다.
사실 가수 장기하 씨에 대해 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저자 장하구 선생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기에 저 시절에 독어 교재를 쓸 수 있었던 걸까요?
->바로 이런 의식의 흐름과 흥미가 희귀본을 모으는 재미랍니다.
오늘은 초보 컬렉터로서 책을 한 권 낙찰받은 뒤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하는 과정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저 취미로 가볍게 시작합니다.
우선 저는 크게 몇 가지를 봅니다.
0. 책과 시대적 배경을 기본으로 살핀다.
1. 일단 저자를 조사한다.
2. 출판사도 살펴본다.
3. 책의 지난 주인들에 대해 살펴본다.
4. 물론 책 내용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0. 책과 시대적 배경을 기본으로 살핀다.-> 본인 컬렉션의 방향에 맞는지 체크
우선 저는 6.25 전후에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세계 2차대전도 마찬가지고, 군사 관련 책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전용사의 후손으로, 관련 행사에도 참 다양한 역할로 참여했습니다.
이 책은 57년도이고, 그때까지도 어려운 시절이라고 생각되는데 누가 독일어를 공부하고 독일어에 대해 썼을까가 궁금해서 일단 경매에 참여했습니다. 솔직히 외국어는 희귀본 거래에서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경쟁자는 소수였고, 비교적 쉽게 낙찰받았습니다.
1. 일단 저자를 조사한다.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저자가 궁금했습니다. 그 시절 독일어를 가르칠 수 있었던 사람.
사실 이런 교재나 시대적 배경에서 저자 찾기는 무척 쉽습니다. 당시에 책을 쓸 정도로 지식인이었다면, 추후 그만큼 훌륭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장하구 라는 이름을 검색하자마자 많은 자료가 뜹니다.
2017년 별세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기사마다 가수 장기하의 조부라고 나옵니다.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무튼 이 분일 가능성이 높은데 직책을 보니 종로 서적 전 회장이라고 나옵니다.
이분이 저자가 맞는지 살펴봐야겠죠?
일단 나무위키로 가서 생애를 살펴봅니다.
1918년 평안북도 의주군 광성면 마전동(現 신의주시 마전동)에서 아버지 장승언(張承彦)과 어머니 송신언 사이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의주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간도성(間島省) 연길현(延吉縣)[1]으로 건너가 용정실천여학교(龍井實踐女學校) 교유(敎諭), 은진중학(恩眞中學) 교무주임 등을 역임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제국대학 예과를 수료하고 조치대학 본과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선과생(選科生)으로 입학한 뒤 본과로 편입하여 다니다가 1944년 학도병 기피를 이유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곧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동생이 소련군의 핍박으로 옥고를 치른 뒤 온 가족이 함께 월남했고, 1946년 경성제국대학에서 이름이 바뀐 경성대학을 1회로 졸업했다.[2]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전임강사, 예과 교수를 거쳐 1949년 경신중학교 교무주임을 역임했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에 부임해 교무과장을 겸임하였다. 당시 독일어 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수입으로 부인의 병원을 개원하였다. 부인 원금순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3] 출신으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했다.
195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으나 어머니의 사망과 교과서 출판업자의 과열경쟁으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동생 장하린과 함께 종로2가의 종로서적을 인수해 경영했다.
1980년대 초 동생에게 사장 자리를 넘기고 회장직에 올랐고 한신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7년 11월 23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출처 나무위키
영화와도 같은 파란만장한 삶입니다.
그리고 제가 찾던 독일어 교과서 관련 이력이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보니 반갑습니다.
제 아이들이 갔으면 하는 대학 중 한 곳입니다.
아이도 없던 시절 남편과 직접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가서 신생아 옷 기념품을 사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두 녀석 모두 하이델 베르크 아기옷을 알차게 입혀 키웠네요..!!
아무튼 여러 정보를 보니, 그렇다면 저자가 이 분이 맞는듯합니다.
가족관계를 보니 자녀분들이 모두 훌륭한 분들입니다. 교수님들도 많이 보이고요.
역시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훌륭한 육아의 기본입니다.(의식의 흐름 무엇..?)
2. 출판사도 살펴본다.
이번 책은 저자가 궁금하여 이것저것 살펴보았지만, 종종 출판사에 더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책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어 교재를 제 기준으로는 꽤 값을 주고 낙찰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출판사가 존재하는지도 살펴보고, 구글맵으로 출판사가 있던 자리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추적을 이어나간 경험이 있습니다.
이 독일어 교과서는 향린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재미있는 표현이 보입니다. '박은 곳'은 선미 인쇄소네요.
3. 책의 지난 주인들에 대해 살펴본다.
교과서이다 보니 종종 필기 흔적이 보입니다.
이름이 쓰여있거나 낙서의 흔적을 발견할 때 기쁩니다.
시간을 거슬러 제가 이 책을 보고 있게 되었다는 것을 원래의 주인은 알았을까요?
과거의 독자와도 소통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 오래된 책을 펼칠 때 알게 되는 기쁨 중 하나입니다.
4. 제일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
책에는 독일스러운 아름다운 삽화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표현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독일은 도이취 제국이라고 하는 것과, '도이취 말을 쓰는 백성'이라는 소제목도 보이네요.
외국 말 중에도 홀란드 말은 도이취 말에 아주 가까우며, 덴마크, 스웨덴, 놀웨이 말들이 그 다음으로 가깝고, 영어도 퍽 연줄이 깊은 말이다.
/ 출처 : 도이취말교본, 장하구
홀란드, 놀웨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홀란드는 네덜란드를 의미합니다.
아무튼 별 내용 없이 겉지식만 훑었는데도 꽤 긴 글이 되었습니다.
추가로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으면 또 나중에 포스팅을 계속 해나가며 아카이빙을 하고자 합니다.
교과서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데, 이제 보니 모은 희귀본 교재가 네 권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중 한 권을 이렇게 공개하게 되어 기쁘네요.
좋은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