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시간의 상대성을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은 80일을 넘겨 목적지로 돌아갔지만,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79일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기도 몰랐던 시차가 어딘가에서 작동한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잘게 갈라진 뱃살을 목도했다. 아랫배를 중심으로, 세면 세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붉은 세로줄이 쩍쩍 그어졌다. 선홍빛 피부가 드러난 자리는 따가웠다. 쓰라린 피부 아래로 아기의 발길질이 지나갔다.
배가 부풀어 오름을 내 마음은 다소 뒤처진 시차로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과연 충격적이었다. 피부 유연 크림은 극적인 방어력이 없었나 보다. 아, 내실과는 관계없이 건장해 보이는 나의 몸뚱이여. 내 피부의 견고함을 알기에 화장품 회사의 과학자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기억력에도 확실히 문제가 발생했다. 뱃살이 찢어진 것과 겨드랑이가 시커메진 것과 목에 주름이 선명해진 것과 피부결이 거칠어진 것과 검버섯이 늘어난 것과 체지방이 증가한 것과 머리가 샌 것과 전체적으로 못생겨졌다는 확신이 생겼지만 당장은 부정하고 싶은 심리를 수차례 물었다. 남편에게.
"다 원래대로 돌아와."
아침에 물어도 점심에 물어도 저녁에 물어도 돌아오는 답변은 단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살은 돌아와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 부정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장애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내 사고는 자꾸만 원점으로 돌아갔다. 단 한 가지, 피부결은 시간을 초월하여 22세기에 도착해있었다.
10개월간 계속된 불안장애는 당연히 수면을 방해했고, 배가 나옴에 따라 한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깨서 첫째 고양이를 찾게 만들었다. 새벽녘에는 둘째 고양이가 와서 귓가에서 그릉그릉 소리를 울리고, 살아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얼굴 냄새를 맡아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계속된 수면 부족과 기타 등등 질환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옆에 있는 사람은 환장하게 짜증 난다.
조각난 유리 멘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날카롭기 그지없이 조각난 유리 파편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혐오에 시달리고, 곁에 있는 사람은 나를 혐오할 지경에 처했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다. 사랑이 아니었으면 이 세상은 진작에 종말이 났을 것이다.
예민한 백수 임산부로서 기왕지사 산모교실도 들어볼 요량이 생겼다.
나는 보건소에 유축기를 빌리러 간 김에 담당 공무원의 강력 추천을 받아 모유 수유 교실을 신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유 수유를 낙관하고 있었다. 그 지나침이 미래의 나를 옭아매리라는 불안이 없지 않았으나, 수업 당일 수유패드나 아기 손수건 같은 기념품을 받고 우선 흐뭇했다.
'눈보라를 뚫고 온 보람이 있었어.'
곧 전문 강사의 강의를 경청하자 의욕이 불안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사는 모유 수유를 지나치게 찬양했다. 누군가가 유축을 해야 할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냐는 질문에는, 유축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냉담한 답변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나를 동요하게 만든 것은 또 다른 화제였다. 그 강사는 흔하디 흔한 질문을 내세워 뜻밖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눈이 마주친 한 산모가 답했다.
"아들이에요."
그녀를 포함한 여러 산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사는 손으로 벌어지는 입을 가리며 탄식했다.
"어머, 어쩜 좋아!"
강사는 딸이 아니고, 다름 아닌 아들을, 다수의 수강생이 품었다는 사실에 연민의 눈빛을 발사했다. 그리고 딸을 열렬히 예찬하던 나머지 아들을 비하하는 듯한 수위에까지 도달했다.
"이런 미친 아줌마를 봤나. XXX, 일하러 와서 왜 쓸데없는 소릴 하는 거야? XX, XXX, XXXX, XX, XX."
정말로 사랑은 위대하다. 인격 떨어지는 소리를 일장 연설하는 인간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이리라. 사회적 평가나 실제 됨됨이와 상관없이 사랑받았을 것이다. 이해받고 존중받는 존재일 것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어머니, 자랑스러운 며느리. 사랑스러운 딸이었겠지, 귀여운 아기였겠지.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머니로부터 피와 살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살이 찢기고 피를 쏟으며 우리를 낳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르면서 사랑해주었던 겁니다
당연히 나는 그 강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하버드 명강사를 맞이한 학생처럼 강사의 말을 받아 적던 행위를 중단하는 대신, 노트에 그린 젖꼭지 옆에 카타르시스적 어휘를 몇 자 적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마음속에서는 알레한드로가 울부짖었지만 정말로 육두문자와 함께 드롭킵을 날릴 수는 없었다. 우울은 예민을 만나 공격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나는 당장 그 자리에서 아기의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고 반박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산모들도 그저 그 소리를 듣고만 앉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아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아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왜 말하지 못했을까.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두고 성별을 운운하며 의기양양해하던 강사는 강의실을 떠났다.
나는 다짐했다.
내가 가진 것을 선이라 여기고, 남이 갖지 못한 것을 비운이라고 동정하거나, 또는 내가 없다고 불운하다고 하고, 남이 가진 것을 최선이라고, 쉽게 입밖에 내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지겨울 정도로 머리에 새겨야 한다.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므로, 흔들려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담당 공무원은 욕하지 말자. 정마담이 그랬잖아. 고니야, 먹고살기 힘들다고.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겠지, 아줌마.'
눈이 내린 도시는 삭막함이 사그라들어 처연했다. 공기가 차분하게 빌딩을 감싸고돌아 눈발을 뿌린다.
가짜 뉴스를 네이처지 등재 논문처럼 신봉하던 노인들과 지하철을 타고 왔던 길, 함박눈을 뚫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 길은 새롭고 비장한 햇살이 비추지만, 눈발의 찬서리가 남긴 바람이 자꾸만 불어온다. 나는 불안의 폭풍이 몰아치는 마음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알레한드로를 알았다. 그는 내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소외된 마음이었다. 나는 그와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예정일이 다가오고, 검은 강물을 보다 남편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태풍에도 꿋꿋하던 낚시꾼도 떠난 겨울 강가에 바람이란 바람이 죄다 불어닥치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다리가 추워졌다.
먼발치에 뒤따라온 남편이 보였다. 다 원래대로 돌아가리라는 그의 말이 믿기지는 않아도 참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