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선명한 복통이 찾아왔다.
가진통이다. 그러던 차에 예정일은 지났다.
짐볼 운동을 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던 때였다.
3월의 공기는 변함없이 차가웠지만 사람을 좀 쑤시게 만드는 재주를 부렸다. 베이비페어에 간 것도 순전히 그 덕분이었다. <강남스타일>의 본고장에 발을 디디자 기분은 한층 고조됐다. 말춤은 철 지난 수준도 아니고, 말할 것도 없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간 오늘날, 그럼에도 박람회장 안의 사람들은 들썩들썩 폴짝거리며 온갖 부스를 메우고 있었다.
한 바퀴 휘 돌고 앉아 목을 축였다.
'새로운 세계다.'
내 관심 밖의 일로 치부해온 곳이라고 해서 그저 그런 곳은 아니었다.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육아용품을 목격하고서야, 나는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이라고 자조했다.
'내가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가 되다니. 돈이 xxx 밖에 없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자괴감도 잠시, 주차요금의 압박과 피로감은,
나를 밖으로 밀어내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자 이것도 불안의 철 지난 레퍼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즉시 새 사람이 된 것처럼 깔깔 호호 집에 가진 않았지만, 시내 면세장에서 원 없이 쇼핑을 즐긴 중국인 무리를 구경하다 어느덧 공복감이라는 다른 상념에 젖어들었다.
밤은 오고 배는 고프고 차는 막힌다
유익한 일을 했건 쓸데없는 수다만 늘어놨건 밤은 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심각하고 이로운 논의보다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졌다. 불황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메커니즘이 다소 이해가 됐다. 사람으로 산다면, 희극이 좋다. 촌스럽고 무지해도 근심만 없다면야. 우울한 왕보다 무사 태평한 촌부가 더 낫다.
개강 시즌에 돌입한 것 답게 젊은이들의 폭풍이 거리에 휘몰아쳤다.
"안 춥나?"
미니스커트에 학과 점퍼를 걸친 여학생들이 지나가자,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나도 궁금해."
남편도 나의 매크로를 따라 말했다.
재작년, 작년에도 우리는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고 미세먼지를 저주하며 귀가하여 머리를 감았다. 그러면 고양이들이 돌봐달라고 하나 둘 따라다니고, 나는 털쟁이들을 번갈아 안아본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얼마 뒤 내가 병실에 누워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안방 침대에 누워 고양이 이마를 쓱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가진통에 아파하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를 새벽에 기묘한 통증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봤던 것이다. 시곗바늘은 새벽 1시를 가리켰다. 화장실에 갔다. 문이 열리고 둘째 고양이가 들어와 변기에 앉은 나를 확인하고 즐거워했다. 거실로 나오자 첫째 고양이가 이동하는 나를 따라와 길게 하품했다.
"순이야, 가서 더 자."
그러면서 순이 머리를 만져주니 그저 흡족해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재로 가 임신대백과사전을 펼쳤다. 나는 몇 장 뒤적이다가 다른 책도 보고 안방에 돌아가 남편을 깨웠다.
"여보, 양수가 터진 것 같아."
고양이들을 재차 확인하고 채비를 마쳤는데 차를 가져온다는 남편이 쉬이 오지 않았다.
남편을 찾아 나선 새벽길은 조용했다. 희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골목을 메웠다. 소리도 기온도 어느 한 지점에 묶인 듯한 그 공간을 먼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애 낳으러 가야 하는데.'
그러다 문득 발길을 멈췄다. 그냥 발이 그 자리에 박혔다. 조금 뒤면 뱃속 아기를 만난다. 일찍이 겪은 적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차고 탁한 심야의 강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정말로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자각했다.
자동차 옆에 선 남편이 보였다.
"여보, 어떡해! 애가 나오려고 해. 그런데, 그런데 너무 무섭고 추워."
나는 달려가 남편에게 매달려 이렇게 울부짖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