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노을 지는 언덕을 내려와

by 코알라

둘째 숙모는 반포 주공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오빠를 낳았다. 오빠는 화장실이 밖에 달린 집에서 영아기를 보냈다. 숙모는 춥든 덥든 어린 오빠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천기저귀를 찬 어린 오빠를 돌보기는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숙모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몇 해 지나 낳은 언니는 아파트 생활을 한 덕에 거저 키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셋째 숙모는 일회용 종이기저귀가 비싸서,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쓰는 걸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정말 큰일이었다. 천기저귀를 무작정 왕창 싸 갖고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니, 종이기저귀 몇 장을 비상용으로 더 갖고 다녔다. 그런데 때가 되면 망설여졌다.

"너무 비싸니까, 결국 아끼고 아끼다 어쩔 수 없다 싶을 때 썼어. 지금은 다 일회용이지만, 그때 다 천이었지. 직접 만들고 기워서 첫째 쓰고, 둘째 쓰고. 근데 손빨래가 진짜 너무 힘들지."


할머니는 강원도 산골에서 삼촌들, 엄마, 이모들을 낳아 키웠다. 어느 날, 나는 밤늦게 대문을 나서는 할머니를 봤다. 나는 엄마를 깨워, 할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이미 멀어진 할머니 뒤를 따라갔다. 가로등 따윈 기대하기 힘든 산중이라 별빛을 의지하여, 하얀 돌부리가 가득한 긴 비탈길을 살살 내려와 개울까지 내려갔다. 마침 할머니는 다 벗은 거나 마찬가지인 차림으로 어두운 개울물을 몸에 끼얹고 있었다.

"엄마!"

"안 자고 뭐해?"

"엄마 따라왔잖아!"

할머니는 그제야 너털 하게 웃었다. 다들 자는데 물소리 내면 깰까 봐 개울물에 씻으러 왔다고 말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춥지 않은지 물었다. 그때는 여름은 아니었다. 산골의 밤은 깜깜하고 서늘했다. 할머니는 괜찮다고 답했다. 할머니는 우리와 비탈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 옆 건물, 그러니까 이웃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아주 모른다고 하기는 조금 뭐한, 그런 집이 있었다. 안 씨 형제와 노모가 사는 1층엔 화장실이 실내에 없었다. 본채는 개조를 반복하여 쪽방 여러 개로 나뉜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유독 그 집만 개조가 덜 됐는지 밖에 달린 화장실을 써야 했다. 안 씨 형제는 쉰에서 예순 사이로, 쇠약한 몰골의 장년이었다. 그들은 고령과 지병을 이유로 노모와 칩거했다. 때때로 형이 현관에 앉아 공무원을 겁박하는 통화를 해댔다. 동생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몸이라, 형인 자신만이 유일하게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는데, 자신도 고령이라 일을 못하니, 도움이 절실하다고 협박했다. 그런 식의 통화는 수차례 이어졌고, 두 형제가 만취하는 날이면 고성방가가 추가됐다. 형제는 초록색병에 든 액체를 사랑했다.


특히 형제는 같은 층에 마주한 이웃 호실을 혐오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곳에 사는 아주머니를 개 같은 년이라고, 술에 취해 고함치며 맨발로 현관문을 세차게 찼다. 그러다 경찰이 와서 주의를 주고 떠나면, 어떤 새끼가 신고했어?! 너지? 어?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새끼 배 떼기를 쑤셔서 창자를 꺼낼 거야! 어? 나와! 개새끼야, 하며 반라의 차림으로 동네를 쏘다녔다. 그런 형제를 나는 관찰하고 이따금 경찰에 신고했다. 한 날은 119가 와서 빨간 고무대야에 다소곳이 탄 노모를 실어갔다. 노모는 몹시 야위었고 상상 이상으로 연로했다. 그리고 형제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밤새 티브이를 크게 틀고 술에 취해 세상을 욕 했다.


나와 아기는 낮잠을 마치고 해 질 녘 산책을 나갔다.

성당과 강변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멀찍이 한강 다리 너머로 저무는 태양을 바라봤다. 아, 오늘도 맑은 날이었구나 하며 아기를 안고 노을 지는 언덕을 내려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출산을 앞두고 감사하게도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글을 쓰며 나는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처럼 굴었는데, 찬찬히 따지면 가진 것이 제법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는 불안하다.

BBC 다큐 <63 up>은 대상 인물을 정해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일대기를 간추려 보여준다. 닐은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지만 방황과 고독의 청년기를 지나, 소박한 위안을 얻는 노년기를 지내게 된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늙을 줄 몰랐어요."

그가 제작진에게 던진 한 마디는 인생무상을 담고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노쇠한 몸과 달라진 사회적 처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것이다. 나는 정신병을 앓는 늙은 안 씨 형제를 떠올렸다. 그들도 원했던 삶이었을까. 내가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은 행불행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삶의 흐름 가운데 행불행은 정거장 같은 것이다. 정거장 몇 개가 싫다고 은하철도 999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다.


닐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평생을 통틀어 우울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남에게 자신이 우울하다던가 하는 정신적인 부분을 밝히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당신은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숙모들, 할머니는 당시 여자에게 주어졌던 삶의 과업을 무사히 잘 마쳤고 나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알았고, 늙은 닐에 대한 동질감이나 인생의 무게를 느끼지 않도록, 하루를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 하루, 어떻게 보낼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분유를 타고, 빨래를 하고, 고양이 밥을 주고, 아기를 안고,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또 하루가 쌓이길 오늘도 기원하며, 다시 아기를 안고 산책을 나간다. 아, 오늘도 맑은 날이었구나, 저기 단풍이 들었네, 예쁘다 하고, 매일 똑같은 소리를 하는 게 나도 모르게 보람찰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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