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도우미 제도 도움을 받아 겸허히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개월 수가 차면 새로운 과업에 주어지므로, 아기가 큰다고 마냥 편해지는 건 아니지만, 신생아를 돌보는 초짜 엄마는 그저 웁니다. 여기에 산후우울증은 덤이 아닌 메인 디시다.
아기의 뱃속에는 종이 하나 있다.
그 종은 시간을 매우 잘 맞추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었고, 울림도 좋아서 자는 이를 벌떡 벌떡 일어나게 돕는다. 기가 막힌 정확성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남편은 말했다.
"80 탈까?!"
"응."
기저귀를 가는 즉시 분유를 물리고, 우리는 일지에 수유량과 시간을 기록했다.
종은 그렇다 칠 정로로 큰 문제가 있었다. 잠이었다. 아기는 잠을 안 잤다. 대장이 잠을 안 자니, 졸병들은 먹는 곳도 자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대장께서는 오로지 안고 있어야 잠을 자든 기분이 좋았다. 이 문제 때문에 산후도우미 분은 짱구베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누워서 안 자니까 괜찮아요~"
말인즉 머리가 눌릴 일이 없다는 소리였다.
고양이들은 아기의 존재보다 울음에 지쳐했다. 우리 부부는 어쨌든 달래고 재우자고 결심하여, 안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기를 안은 채 앉은 자세로 자는 법, 벽에 기대서 자는 법 등을 연마했다. 그 노고는 극심한 피로와 아기의 완벽한 두상이 되어 돌아왔다.
수면부족, 전신피로, 요통, 골반통, 위염, 질염, 방광염, 건초염, 족저근막염, 결막염, 임파선염, 두통, 치통, 현기증, 산후우울증.
얼마나 집 안에만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활 반경은 아무리 힘을 내도 안방, 거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은 봄에서 여름이 되어 계절이 무르익어갔다.
산후우울증 대표 증상은 무력감과 중압감이다.
비혼주의,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각종 매체는 도리어 결혼, 출산, 육아, 노후생활을 조명하여,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다들 비슷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안 자고 우는 젖먹이, 홀로 지내는 매일, 통장 잔고, 육신의 고통이 시시각각 숨을 조여 오는 와중에 인터넷과 티브이에 차고 넘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협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기를 풍족하게 키우는 날씬하고 세련된 주부, 화목하고 여유 있는 가정을 보며 열패감이 증폭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자고 일찍부터 수없이 다짐했지만 인생은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 나 빼고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서, 배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배금주의, 물질주의, 보여주기로 점철된 가상의 이미지라고 비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 너무 잘 만들어져 사람의 부러움을 사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선망. 이것이 가공의 목적일 것이다.
나는 티브이를 안방에 끌어들이는 대신 현대사회상을 그리는 매체는 스스로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뉴스도 삼갔다. 아기를 안고 밤을 지새우며 동물 다큐와 영화를 봤다. 지역카페, 맘카페, 블로그 활동도 시작하지 않았다. 출산을 통해 느낀 바가 커서, 책은 참고만 했다. 어쨌든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다들 사는 게 너무 다른데, 그렇게 여기지 못하는 초조함이 크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 질병을 극복하는 길은, 나의 계획으로 회복하고, 내 주관으로 아기를 키우는 것뿐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길은 순탄치 않겠지만, 느리게 외진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음을 알았다.
산후 3개월 가까이 마음은 널뛰기를 뛰었지만, 널뛰기라도 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았다. 아기는 잠을 거부하고 매 순간 내 품에 매달려 있었고, 나는 배변, 끼니, 청결에서 당연 멀어졌다. 그래도 생각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바라는 대로 좋아지겠지, 언젠가 정다운 친구가 되어주겠지, 이렇게 염원하듯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나아지겠지. 혹시 모르지 않은가. 누구의 말처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지.
잠시 내려놓았던 아기가 또 깼다.
이번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이런 추리도 변화무쌍한 젖먹이에게 큰 효용은 없다. 하지만 알아도 자꾸만 원인을 탐구하려고 했다. 꼬마야, 우린 끝내 해결할 것이다. 무엇이든 그 뿌리를 알면 측은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것은 내가 아기와 남편, 고양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원이자 나 스스로를 향한 격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