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데미안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당신이 옳다
저는 이십 대 후반까지 거의 병원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감기에 걸려도 집에 와서 깨끗이 씻고 자고 일어나면 약을 먹지 않아도 금방 나았고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는 처음 스물아홉에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따돌림도, 직장에서의 무력감도 한계에 다 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계속해서 통원치료를 하고 있지만, 한동안은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차마 죽지도 못하고 폐인처럼 사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책이었습니다. 책은 어려서부터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책은 안갯속에서 헤매는 저에게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책은 작가의 인생의 총체가 담긴 보고(寶庫)였습니다. 혹시 지금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거나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분들에게 위로가 될 책들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이 책들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하야마 아마리
서른 살, 그러니깐 만 스물아홉에 제 나이가 적인 책 제목을 보고 강렬하게 끌렸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였습니다. 감동소설대상작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소설 속 주인공 아마리는 생일에 바닥에 떨어뜨린 딸기케이크를 보며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오열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TV속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장면을 보며 그곳에 가고 싶다는 투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그렇게 자살을 원하던 그녀는 1년간의 유예기간을 선물하죠.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사는 아마리를 보며 독자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삶이란 스물아홉에 멈추는 게 아니라, 그 후로도 계속되며, 인생에는 무수한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요. 세상이 정해놓은 표준화된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아마리는 1년 간 치열하게 산 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더욱 매력적인 여성으로 거듭납니다.
데미안/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가장 유명한 소설 <데미안>은 서른한 살에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한 번만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소설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싱클레어는 무심코 내뱉은 거짓말 한 마디로 평온한 세계에서 냉혹한 세계로 던져집니다. 그런 그에게 데미안이란 존재는 커다란 위안이고 지혜의 멘토가 되어주죠.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에 대해서는 깊은 애정과 존경심까지 여러 감정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한층 성장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도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은 아닐까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매트 헤이그
이 소설은 서른다섯에 읽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게 소설 속 여주인공 노라도 서른다섯이었죠. 그래서 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노라는 자살을 꿈꾸다가 우연히 도서관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삶을 수차례 여행합니다. 슈퍼스타가 되기도 하고, 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되기도 하고, 북극탐험가, 첫사랑의 아내, 의사의 아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후회하고 무수한 삶을 살아보지만 결국 동경했던 그 삶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건 명암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죠.
결국에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자신의 삶이라는 걸, 자신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현재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노라는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힘을 얻으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노라를 따라가며 수많은 삶을 살아보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
습지에 사는 카야는 매우 아름다운 외모로 눈길을 끌지만 불우한 가정사로 마을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로 손가락질을 받고 남자들은 이용하려고 다가오고 사랑했던 남자마저 그녀를 떠나갑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습지의 생물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그런 꾸준한 노력이 그녀를 살려내고 사랑하는 사람도 되찾습니다. 카야를 사랑하는 테이트는 그녀의 비밀을 죽는 순간까지 지켜줍니다. 로맨스와 스릴러, 추리가 결합된 소설로 반전이 상당히 강합니다. 이 소설이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실로 놀랍습니다.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세이카 료겐
이 소설은 일본의 라이트노벨로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이 소설 속 여주인공도 자살을 꿈꿉니다. 또 다른 자살을 꿈꾸던 남자가 사신에게 목숨을 판 대가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고 매번 그녀를 구해준다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그러다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또한 죽고 싶어 하던 순간에 또 다른 죽고 싶어 하던 여자에게 아무런 위로를 전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이 힘겨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마음이 슬퍼지다가도 이렇게 소설로써 자신의 삶뿐만 다른 이들의 삶까지 구원한 작가의 용기에 감동하게 됩니다.
당신이 옳다/정혜신
이 책은 정신과전문의이자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인 정혜신 박사의 에세이로 모든 감정은 수용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감정과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감정은 충분히 공감받을 때 해소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타인에게 충고하거나 조언하거나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일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방어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온전히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책입니다. 설사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나라도 온전히 나를 수용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감정이 옳다고 해서 행동까지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책들은 제가 삶에서 허우적거리고 고통받을 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은 마냥 행복하지만도 낭만적이지만도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 같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문학작품들로 삶을 살아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책들이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기를 바랍니다.
*추가로 읽어보면 좋을 책
슬픔을 수놓은 손수건 | 루비(우연주) | 유페이퍼 - 교보ebook
알라딘: [전자책] 슬픔을 수놓은 손수건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기쁨을 위해 슬픔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보노보노》에서도 야옹이 형은 보노보노에게 말합니다.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 끝나기 위해서 즐거운 일도 끝나는 거라고 말이죠.
마냥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삶에 닥쳐온 시련과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브런치 매거진 [반창고]에 올려두었던 글을 수정·보완해서 전자책으로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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