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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비극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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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리어 왕>의 핵심 내용과 결말을 다룹니다. 작품을 직접 읽고 싶은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우리는 종종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현혹되곤 한다. 사람들이 가진 재산이나 지위, 값비싼 명품들. 또는 그들이 하는 번지르르한 말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서 리어왕의 막내딸 코델리아는 ‘침묵은 금이다’란 말을 실천한 속 깊은, 참사랑을 실천한 공주였다.


리어왕은 자신은 늙고 더 이상 왕국을 다스리기 어려워지자, 딸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험한 후,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온갖 아첨과 꾸며낸 말로 리어왕을 흡족게 한다. 하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는 자신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남편에 대한 사랑의 자리도 있어야 한다는 솔직한 말로 왕을 분노케 한다. 그리하여 리어왕은 코델리아에게 한 푼의 재산도 주지 않고 쫓아낸다.

코델리아에게는 구애하던 두 명의 연적이 있었다. 버건디 공작은 코델리아가 아버지에게 쫓겨나고 지참금이 한 푼도 없다는 걸 알고 결혼을 포기해 버린다. 하지만 프랑스왕은 코델리아의 고귀한 정신을 높이 사고 빈털터리가 된 코델리아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에 대해 리어왕을 수행하는 바보는 리어왕을 “이 친구는 자기 딸을 둘은 추방하고 셋째에겐 본의 아니게 축복을 내렸단 말씀이야.”라고 표현한다. 코델리아가 속물적인 버건디 공작과의 결혼을 피하고 프랑스왕의 진정한 사랑을 통해 프랑스왕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리어: 공작께선 결점은 많은데 친구는 하나 없고 새로이 짐의 미움 샀으며 저주라는 지참금에 더하여 의절당한 여자를 맞을 거요 말 거요?

버건디: 죄송합니다만 그런 조건이라면 선택할 수 없습니다.

리어: 나를 더 즐겁게 못 했으니 넌 아니 태어난 것만도 못하니라.

프랑스: 천성이 느린 탓에 하려고 하는 일을 얘기 않고 놔두는 그런 성향 말입니까? 본질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계산에 얽혀 버린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녀를 맞이하시겠소? 그녀는 그 자체로 지참금입니다.

버건디: 미안하오, 이렇게 부친을 잃었으니 남편 또한 잃게 됐소.

프랑스: 왕이시여, 우연히 내게 온 무일푼 그대 딸은 짐과 백성, 아름다운 프랑스의 왕빕니다. 저 물 많은 버건디의 모든 공작 다 합쳐도 이 값없이 소중한 내 아가씨 못 사 가요. 코델리아, 몰인정한 그들과 작별하오. 더 나은 곳 찾으려고 이곳을 잃는다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흘러간다. 리어왕은 자신의 충동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죗값을 톡톡히 치른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연달아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책망한다. 폭풍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은 미처 간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리어왕의 신하인 글로스터의 이야기도 두 줄기로 함께 흘러가는데 그 또한 서자인 둘째 아들의 음모에 속아 넘어가 첫째 아들, 에드거를 내쫓고 둘째 아들 에드먼드로 인해 두 눈을 뽑히는 비극을 맞이한다.


리어왕의 첫째 딸과 둘째 딸도 글로스터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를 두고 치정싸움을 벌이다 둘 다 죽고 만다. 안타까운 건, 끝까지 리어왕을 사랑하고 보살폈던 코델리아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선량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코델리아 또한 에드먼드의 명령으로 자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고 이를 비통해하는 리어왕도 죽고 마는 것이다. 리어왕의 어리석은 판단이 모두에게 최악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이 비극을 읽고 나서 사람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결점 많은지 다시 한번 느꼈고,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사악한 두 딸들에 속아 넘어간 리어왕의 어리석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극적인 삶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나 보기 좋은 것들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안에 내재된 진실을 꿰뚫는 깨어있는 눈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세상은 현란한 속임수가 넘쳐나지만,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진실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그러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선, 셰익스피어처럼 위대한 대문호들의 고전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



가진 거 다 보여 주지 말고

아는 거 다 말하지 말고

있는 거 다 빌려 주지 말고

걷느니 말 타고 다니고

듣는 거 다 믿지 말고

단판에 승부를 걸지 말고

술과 계집 버리고

집 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스물 내고 이십보다

더 많이 남길 거야. / 리어왕, 셰익스피어, 민음사,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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