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사람이 쉽게 친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동질감’ 때문이다. 비슷한 취향과 말투, 생각이 모여야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다름을 견디지 못한 마음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낳았는지 알 수 있다.
흑백차별, 종교전쟁, 조선시대의 신분제….
겉으론 권력과 이해관계의 문제였지만,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다름을 두려워한 마음’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회는 보이지 않게 ‘정답’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나 방식은 쉽게 ‘이상하다’는 낙인이 찍힌다. 얼마 전, 가수 호란이 대학 시절 ‘깃털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게 왜 따돌림의 이유가 되어야 할까.
세상은 여전히 남다름을 경계한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까만 아기 양》이라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눈길이 갔다. 까만 양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알프스 산에서 양을 치는 할아버지와 그의 양치기 개 폴로로부터 시작된다. 폴로는 까만 아기 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양들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까만 양은 억울했다.
“나도 눈처럼 하얀 털을 가졌다면 좋을 텐데…”
이 장면에서 나는 문득 대학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강의 시간에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던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누군가.
그때 나는 ‘왜 나만 미움받을까’ 하는 억울함을 자주 느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따뜻하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양 떼를 구한 건 바로 그 까만 양이었다.
눈 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모두가 깨닫는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다름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까만 양 같은 사람을 불편해할 때가 있다.
그들이 내 기대를 채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은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할 이유가 없다.
모두 각자의 자유의지로 존재하는,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범생’이라 불리는 학생은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아이지만,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 다른 생각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때로는 반역자였지만, 결국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정신질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인류의 창의성을 유지하는 유전적 씨앗이 있기 때문이라고.
고흐, 버지니아 울프, 존 내쉬가 그러했다.
남다름은 때로는 고통을 낳지만, 그 고통 속에서 인류는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까만 양을 이상하게 여기던 양치기 개 폴로처럼 우리도 종종 남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각자의 빛깔이 다르기에 세상은 아름답다. 내 안의 까만 양을 억누르지 말자.
그리고 타인의 까만 양도 따뜻하게 바라봐주자. 남다름은 결점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하는 가장 인간적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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