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펜을 잡아본다. 딱딱한 클립보드 위에 종이를 놓고 뾰족한 볼펜으로 부드럽게 휘갈기는 느낌이 참 좋았는데 말이다. 쓰고 싶었던 주제도 많고 열망도 컸는데 왜 글쓰기와 멀어졌을까 생각해보았다.
내용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사실 이것저것 끄적여 놓은 게 많았다. 그중에서 이케아의 독특한 경영방식에 관한 글을 쓰던 게 있는데,탄탄하고 오류 없이 쓰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잉바르 캄프라드(창립자)에 관한 책 1권, 경영철학에 관한 책 2권을 빌려서 읽고 관련 기사들도 찾아봤다.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내용으로 승부를 보자!’라고 생각했다. 글 재주가 없어서 부족한 부분을 지식으로 메꾸고 싶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글은 원하는 방향으로 써지지 않고 부담감만 커졌다. 결국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이렇게 써놓은 용두사미 글이 10편이 넘는다.
사실 리포트를 쓸 때는 며칠 동안 붙잡고서 내용도 풍부하게 채우고, 논리도 다듬으며 퇴고를 계속한다. 그러다 보면 나름 괜찮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글쓰기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완성했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별생각 없이 썼던 글이 편안하게 잘 읽혔다. 그에 반해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을 붙잡고 있던 글은 무거웠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욕심도 있었다. 내 취향은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유머와 센스가 있는 글인데,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취향과 역량의 괴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멀리서 빈다>(나태주 시인)라는 시 마지막에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라는 문장이 있다.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화자는 담담히 말하지만 이 문장엔 깊은 사랑과 그리움이 깔려있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나태주 시인도 이 문장을 '신이 주신 문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한 편의 시 가운데는 신이 주신 문장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멋지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글을 쓴 후에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면 본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걸 뛰어넘어 본인이 만족하고, 많은 독자가 감탄하는 문장인 것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문장. 멋있지는 않아도 나의 언어로 쓴 나만의 문장. 내가 아무래도 이런 것을 찾고 있었나 보다. 이건 나태주 시인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점점 글쓰기에 흥미를 잃고 지쳤다. 게다가 게으름까지 더해졌다. 천천히 글을 써보자는 처음 다짐이 무색해졌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반성을 했다. 나는 좋아서 시작했던 일도 꾸준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각심을 깨우기 위해 가끔 떠올리는 격언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No action, No more beyond)’ 그대로 계속 살다 보면 그대로라니. 정말 무서운 말 아닌가. 그래 그냥 힘 빼고 꾸준히만 하자. 어차피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인데 부담 갖지 말자. 과한 욕심도 부리지 말자. 딱 본전만 하자. 이렇게 편하게 쓰면 뭐라도 하나 걸리지 않겠어? 다시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