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접 : 매년 김장 하시는 엄마께
어제부터 ‘김장 날 해 먹는 음식’, ‘김장과 잘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보고 있다. 첫 대접은 김장 날에 맞춰 해드리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날은 엄마가 가장 고생하시는 날이기도 하고 우리 가족이 1년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음식 노동 행사이기 때문이다(이듬해 김치와 김치로 하는 모든 요리가 김장 날에 달려있다). 우리 집 김장 날은 다다음 주 목요일, 금요일인 11월 17일과 18일로 예정되어 있다.
김장이 우리 가족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행사인 이유는 단순히 김치로 하는 요리 때문만은 아니다. 할머니께서 배추와 무, 갓, 쪽파 등 각종 재료를 텃밭에서 기르시고, 수확부터 뒷정리까지 모두 우리 가족이 직접 하기 때문이다. 11월이 되면 각자 일정에 맞춰 김장 날짜 후보를 정하고 그중 가장 적합한 날을 정한다. 초겨울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갑자기 추워져 새벽에 서리가 내리기도 하고, 서리가 내리면 배추가 얼기 때문에 기상청 일기예보를 예의주시하고 김장 날을 잡아야 한다. 언 배추로 김장 김치를 담그는 해에는 아주 치명적인 맛과 할머니의 잔소리를 덤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1월 첫째 주가 끝날 무렵 기온이 훅하고 떨어졌다. 언제 배추가 얼어붙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신 할머니는 엄마께 당장 김장하라 명(命) 하셨다. 그리하여 가족 구성원의 일정과 기상청에서 나온 일기예보를 고려한 가장 빠른 날짜인 11월 17, 18일을 김장 날로 잡았다.
우리 집 김장 행사를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준비 과정부터 김치냉장고에 넣어 익히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까다로운 행사이다. 우리 집의 김장은 할먼네(할머니 댁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마당 텃밭에서 배추를 뽑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지런히 밭에 뿌리를 두고 자라고 있던 배추를 뽑고, 4등분으로 자른 뒤, 흙을 씻어내어 절일 준비를 한다. 큰 고무 대야에 배추를 넣고 굵은소금을 잔뜩 뿌려 배추를 절인다. 동시에 밭에 있는 마늘과 무, 생강, 쪽파, 갓 등 김칫소에 들어갈 모든 재료를 뽑아 씻고 썰고 빻고 다듬는다. 마늘을 빻거나 무채를 만드는 일은 예전에는 집에서 직접 했는데, 재작년부터는 할먼네 근처 농협 마트에 동네 주민을 위해 준비된 채를 써는 기계를 활용한다. 그 기계는 마치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다.
그리고 밤새 배추를 절이고 또 절인다. 예전에는 할머니 방식에 따라 밤새 23시간마다 알람을 맞춰 일어나 배추를 뒤집어 주었는데, 재작년부터 엄마의 ‘효율적인 절임 간소화’ 덕분에 저녁 식사 후 한 번, 자기 전 한 번, 일어나 한번 뒤집어 준다. ‘효율적인 절임 간소화’가 생긴 후부터는 잠을 푹 잘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튿날 해가 뜰 무렵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잠이 부족 했기 때문이다.
눈뜨자마자 세수만 하고 전날 준비해 두었던 재료들을 가지고 소를 만든다. 김칫소는 전날 준비한 재료 및 고춧가루와 새우젓, 갈치젓, 까나리액젓 등 나는 외울 수도 없는 다채로운 양념을 넣어 버무린다. 중요한 건 정확한 계량이 아니라 배추의 절임 정도와 양, 올해 고춧가루의 매운 강도에 따라 비율을 조절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할머니와 엄마의 숙련된 감에 의지한다. 만들어진 김칫소는 색깔도 중요한데 정말 빨간, 맛을 보지 않아도 매워 군침이 싹 도는 빨간색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소를 절인 배추에 잘 발라주고 또 바르고, 또 바르고, 또 발라서 절인 배춧잎이 한 개도 남지 않으면 김장은 비로소 끝난다.
우리 집은 김장이 끝나면 과정에서 따라오는 육체적 고단함을 잊게 해줄 엄마표 수육을 먹는다. 알배추 쌈을 싸서 먹어도 너무 맛있고 갓 만든 김치를 얹어 먹어도 너무 맛있는 수육은 김장 노동에 대한 값진 보상이다. 아빠는 항상 여기에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고하시며 항상 귀신같이 어디선가 막걸리를 꺼내오시고는 했다.
엄마는 김장에, 수육에 나보다 더 고된 노동을 하시기에 김장이 끝난 저녁, 보상이 될 수 있는 멋진 식사를 대접하려고 한다. 그래서 갓 만든 김장 김치와 어울리고, 김장 날 먹으면 맛있는 음식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어떤 음식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음식을 올려드려야 엄마가 좋아하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