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그리고 작가의 삶
돈과 일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둘은 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둘은 서로에게 등을 돌릴 수 없는 그런 은밀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돈과 일은 때려야 때어놓을 수 없는 그런 사이다. 어쩌면 둘은 나 몰래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를 선택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돈과 일로써 우리의 삶의 유능과 무능이 나누어지기도 한다. 고리타분하지만 어르신들의 “지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 할 텐데”류의 고민이라던지, 일하는 법도 모르는 신입사원들의 “밥값은 해야죠”라는 말처럼 말이다. 요즘처럼 밥을 사 먹는 시대에는 밥값으로 얼마를 낼 수 있느냐가 유능함의 척도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돈이 많고, 연봉이 높을수록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두뇌나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 보이기도 한다. 나는 무의식 중에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며 나는 이 사회에 발맞춰 1인분은 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지고는 한다. 참고로 나는 보통 밥을 1.5인분 정도 먹으니 1인분만 해서는 안될 것 같긴 하지만.
몇 주 전, 아니 몇 달 전부터 <실패의꼴>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던 초단편 소설들을 묶어 독립출판 책으로 만들고 있다. 분량이 꽤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편집은 해보니 부족한 것 같아서 미공개 초단편을 3편을 더 썼다. 그리고 총 11개의 스토리가 있는 이 소설들을 4번씩 읽으며 고치고 지우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핑크색의 눈에 띄는 표지까지 만들고 보니 이제는 인쇄소에 연락을 해야 할 단계까지 와버렸다. 그리고 추석을 맞이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는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수익 계산기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이번 책은 얼마로 책정하면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입이 나오는지 계산해 보았다.
인쇄하는 모든 책을 팔아도 내가 전에 다니던 건축사사무소의 한 달 월급이 되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만든 작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물성은 지닌 책으로 나와도 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독립출판도, 출판계도 어쩔 수 없이 1%의 소수의 작가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하며 한순간 염세주의자로 변질될 것 같았다. 나는 통장 잔고와 수익 계산기 스프레드시트를 보면서 모니터에게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하지. 아무래도 글 쓰고 책을 파는 것만으로는 당장 밥벌이는 못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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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책을 1년에 한 권 낼까 말까 하는 독립출판 작가로 살아오면서 다른 작가님들의 삶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박상영 작가님처럼 문학상을 받은 작가님도 있고, 독립출판을 시작으로 이제는 스타가 되신 이슬아 작가님, 아니면 독립출판 북페어에서 만났던 연옥 작가님이나 윤지 작가님, 이택민 작가님 등. 매일 업데이트되는 그들의 삶을 열심히 염탐하고 있다.
염탐의 이유는 나의 선배인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매스미디어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님들은 전업작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병행하거나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시기도 한다. 나도 건축사사무소를 다니며 글을 썼고, 퇴사 후에도 알바를 병행하며 살아보려고 했으니 작가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외에도 클래스나 강연, 북토크, 독서모임 같은 2차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고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는 작가님들도 있으며,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상당하다.
나도 건축사사무소를 나와 독립출판 작가를 시작으로 글 쓰는 일을 하겠다고 했으니 지금까지 지켜본 선배들의 사례에 따라갈 계획이다. 신작이 나오면 소소하게라도 북토크를 하고 싶고, 가능한 구독자 수가 나온다면 뉴스레터도, 책을 좋아하니 독서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도,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것을 알려주는 클래스는 여는 것도 하고 싶다. 물론 이렇게 작가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하는 일은 당장 수익을 내기보다는 차곡차곡 시간과 글의 켜를 쌓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딘가 모르게 당장 돈 300만 원을 벌지 못하는 내가 무능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나 돈과 일의 관계와 그 관계로 인간의 무능과 유능을 결정하는 내 무의식 속 관념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무능함이라는 무기력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이기는 건 역시나 내 마음이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하기 싫은 일을 참고하다가 이 사달이 난 것처럼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야 하는 나의 고집스러운 마음.
나는 추석 연휴 끝에 열어본 수익 계산기 스프레드시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머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마음은 어서 빨리 인쇄소에 견적의뢰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예전 이택민 작가님으로부터 받은 인쇄소 연락처를 꺼냈다(이택민 작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쇄소에서 견적을 낼 때 필요한 스펙을 모두 적고 발송을 눌렀다. 인쇄소 대표님은 아마도 내일쯤 바로 엑셀로 만드신 견적서를 보내주실 것이다.
메일을 보내고 OTT 예능을 보면서 깔깔깔 웃으며 무능하다고 느끼는 감정들을 희석시키니 어쩌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과 일들이 내가 평생을 걸쳐 원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도전하고 달려가는 것. 그리고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 그것들이 타의든 자의든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행운이고 행복이 아닐까. 비록 그 일이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한 발 한 발 용기 내어 내딛는 수밖에. 아직은 동굴 속 같이 캄캄한 밤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새벽의 여명에 걷고 있던 길이 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