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5에 다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페어에 들렸던 게 언제였나 생각해 봤다. 내가 셀러로 나갔던 2023년 5월에 열린 리틀프레스 페어가 마지막이었다. 참으로 좋은 기억이 있는 북페어였다. 독자를 직접 만나고 다른 작가님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던. 그리고 북페어 마지막날 부스를 정리하고 같이 참여했던 작가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글과 책을 꾸준히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새해 다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럼 뻔한 이야기겠지만, 같은 해 6월에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고 생업에 치어 글쓰기와 책 만들기는 꾸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노력은 하는 편인지라 책 1권을 출간했다. 그렇지만 북페어를 다시 나가진 못했다. 3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회사 일정으로 무산되었다는 슬픈 전설만 남았을 뿐이었다.
2023년 5월 이후 처음으로 들린 북페어가 2025년 10월 중순에 열린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게 어색했다. 글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독립출판을 하는 사람치곤 아주 오랜만에 북페어에 왔다는 게 말이다.
페어가 열리는 건물 앞에는 작품 낭독이나 이벤트가 열리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는 젤라토와 커피, 빵을 파는 부스가 있었다. 내가 예전에 왔었을 때보다 훨씬 더 커졌네 생각하며 페어가 열리는 건물로 들어갔다. 처음 나를 맞이해 준 분은 오랜만에 보는 작가님이었다.
ㅇㅇ 작가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네 저야 뭐 그럭저럭.
나는 작가님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사람들이 가득한 행상장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이 책, 저 책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나는 부스 절반도 보지 않은 채 도망치듯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그 공간과 사람들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고 북페어뿐만 아니라 책과 글쓰기와 멀어졌던 내 모습이 어색했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마저 퇴사하고 다시 책을 만들겠다고 돌아온 내가 너무 이질적이었다고 하면 전달이 될까. 나는 밖으로 나와 커피를 사 마시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페어가 열리는 건물로 들어갔다.
내가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읽었거나 눈에 익숙한 책들이 많았다. 부스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익숙한 얼굴의 작가님 부스에 도달했다.
오! 재민 작가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동안 다른 페어에서는 못 뵀던 것 같은데, 오늘은 오셨네요.
그동안 회사 다니느라 가고 싶었는데 못 왔어요.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북페어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모두 프로젝트 데드라인이랑 겹쳐서 3번이나 못 갔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나는 내가 듣고 있노라면 마치 변명을 쏟아내는 어린아이 같았다. 작가님 부스에서 신간 책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다시 돌아다니며 부스들을 구경했다. 익숙한 책들이 많았다.
일주일 전 온라인으로 신청해 놓은 페어 특별 강연 시간이 되어 2층 강의실로 올라갔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90년대생 독립출판사 대표들의 느슨한 연대>에 대한 토크가 이어졌다. 나도 90년대생이고 독립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회사를 가지 않았으면 혹시나 저기에 있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그들의 독립출판 여정과 어려움, 그리고 좋은 점들을 들었다.
강연 마지막에는 질문 시간이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독립출판을 길게는 10년, 짧게는 3년 해오시면서 자신의 글이, 자신이 출판하는 책이 다른 제도권 안에 있는 기성 책들과 비교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용기를 가지고 계속 출간을 하시냐고 물었다. 한 작가님은 대형 출판사와도 연락이 닿았던 이야기,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과 자신의 가치관이 맞지 않아 내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이 행복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앞으로라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바로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단단한 사람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자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셨다. 나는 한 작가님의 책을 받게 되었는데 이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는 분이라 사인을 받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슬며시 나도 책을 쓴다고 말했다. 작가님은 내 책 <퇴사 사유서>를 안다고 말하셨다. 나는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 후에도 한참을 부스를 둘러봤다. 많은 독립 책과 그림과 굿즈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과 애정을 갖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페어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도 그 사람들 사이에 끼어 둘러보고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 나왔다.
페어를 나올 때는 내가 들어갈 때 느꼈던 이질감은 없었다. 그저 나도 기회가 되면 저 사이에 셀러든 스텝이든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려면 나도 굳건하게 나의 생활을 지키며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한편에 다짐을 새겼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물론 페어에서 구입한 열 권의 독립출판물로 손은 무거웠지만 그 무게만큼 용기를 얻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