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며
육 년을 서울에서 혼자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오 년 하고 십일 개월을 살았다. 그동안 이사 한번 하지 않고 햇볕이 잘 드는, 5층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은 관악구 원룸에 살았다.
서울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생각했던 것은 내가 서울에 온 이유였다. 서울토박이거나 본가가 서울에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은 직장 때문에 서울을 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직장을 위해서라면 서울에 기꺼이 올라와야 하는 줄만 알았다. 다행히도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중견기업에 합격했고 2019년 12월 23일 서울로 상경했다. 그때 나는 어떤 꿈을 꾸었나. 서울에서 버티고 버텨 아파트를 매매하는 꿈이었나. 아니면 중견기업에서 버티고 버텨 본부장 직함을 다는 게 꿈이었나.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 돈을 벌어서 서울을 탈출하는 꿈이었나. 이제는 흐릿해져 버린 그때의 기억에서 내가 서울에 살기 시작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기억이 흐릿해져 가는 사이 나는 한 번의 이직과 두 번의 퇴사를 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나는 3권의 독립출판물을 만들었고, 2023년에는 사업자를 등록을 하고 출판사도 만들었다. 그리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내가 했던 모든 것을 합쳐도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원룸을 나올 순 없었다.
서울에 살아야 한다면 떠날 수 없는 이 원룸에 정을 붙여야 했다. 그래서 돈이 생길 때마다 가구도 들이고 카펫도 깔고 커튼도 달았다. 집에 살림살이는 점점 늘어났고, 어떻게든 이곳을 내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은 서울 밖을 향했다.
이삿날 닷새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육 년 정도를 살았으니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부터 첫 퇴사를 하면서 미래를 그린 노트까지 별의별 물건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내가 서울을 붙들고 싶어 간직하던 물건들. 나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고르고 골라 모두 종량제봉투에 가득 담아내어 버렸다. 이사를 하려면 이제 필요 없는 것을 청산하고 가볍게 가는 것이 아무래도 좋은 선택이었을 터이니. 짐을 싸고 정리하다 보니 서울집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이 작은 원룸에서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 모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차근히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왔다 갔던 작은 원룸. 집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남은 것이라곤 기억 속 사람들과 함께 먹은 음식, 재밌는 대화들, 시간이 아까워 잠들지 않던 밤. 그것뿐이었다. 작은 원룸 속 혼자 무엇을 위하는지도 모르고 치열하게 살았던 날들은 휘발되었고, 증발되어 흐릿했다. 그 노력들과 시간들은 좋은 기억이 아니어서 그랬나. 아니면 생각 없이 치열하기만 했던 나를, 나는 사랑하지 않았나. 그러다 서울에서 마지막 잠에 들었다.
서울에서 떠나는 날은 정신이 없었다. 버리고 버려도 많은 짐들을 트럭에 싣고 서울을 떠났다. 서울을 뒤로하고 이사를 하는 내 뒷모습을 이사는 선뜻 도와주겠다던 친구가 찍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너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육 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남은 것들은 나의 작은 서울집에 남겨두고 서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