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서울을 떠나 본가로 돌아왔다. 스무 살때부터 혼자 떠돌아다니며 살던 삶을 뒤로하고 회귀했다.
돌아온 본가는 경기도 남부에 위치한 부모님의 아파트다. 동탄이나 남양주의 어느 신도시처럼 도시계획이 되고, 주거지역으로 여러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곳이 아닌, 아파트 단지 하나만 홀로 버티고 있는 그런 곳이다. 다행히 아파트 앞 상가에는 두 곳의 치킨집(매우 중요)과 두 곳의 카페가 있고 날씨 좋은 날에 산책할 곳이 근처에 있다. 조용하고 한적하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서른 다섯살 아들과 부모님이 같이 산다는 것뿐이다.
지난 빼빼로 데이에 이사를 했다. 손 없는 날, 이전 집 계약이 만료 되는 날 등 외압으로 정해진 날짜가 아닌 내 의지로 정한 날이었다. 특별이 그 날이 빼빼로 데이와 겹칠 이유는 없었고, 그저 나에게 가장 적당한 날이었다. 이사를 하게 된다고 SNS에 소심하게 알리니 도와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사중개어플에서 연결된 이삿짐 아저씨와 친구 덕분에 수월하게 이사했다. 특히 친구가 얼마나 자신의 이사처럼 열심이었는지 이사 후 짜장면 곱빼기와 탕수육을 안 사줄 수가 없었다. 오만 원은 나올 것 같은 양이었는데 미안하게도 삼만 삼천 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서울 토박이인 그 친구는 지방의 물가에 대박이라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친구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집의 새로운 방은 화장실이 딸린(그리고 안방에서 제일 먼) 방이다. 엄마, 아빠가 내어주신 소중한 방이다. 스무살때부터 계속 혼자 살았던터라 본가에는 내 방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올때마다 거실에 이불을 깔아놓고 자곤 했었다. 이제 본가에 내 방이 생긴 사실에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이 방은 부모님이 창고로 쓰실정도로 겨울에는 추운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보일러실에서 제일 먼 방이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새로운 방에는 이전 집에서 가져온 살림살이가 뒤죽박죽 널브러져 정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하나둘씩 풀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할때까지 옷을 사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에 맞게,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만 정리해 왔기에 옷가지는 소박했다. 단숨에 모두 옷장에 걸었다. 그리고 큰 가구인 수납장과 선반을 방 한쪽에 몰아 배치하고 잡동사니를 모두 쳐박아넣었다. 이사를 하면서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다음 차마 버릴수 없었던 애정하는 책 몇 권을 정리하고 앞으로 일할 책상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초록색 식물 친구들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생각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짐 정리를 해치워버렸다. 아무래도 서울 회사에서 배운 빠릿빠릿한 버릇을 아직 못 고친 덕분이었다.
정리가 끝나고 아들의 이사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밭일을 보러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안방으로 가시는 길에 새로운 아들의 방을 둘러보셨다. 아무래도 임대인으로서 어떻게 하고 사나 궁금하시긴 했었을거다. 생각보다 정리를 잘한 모습을 보시고 엄마는 여자방보다 더 이쁘다고 하셨다. 여자의 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친누나의 방보다는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어 그러셨던것 같다. 아빠는 하숙생!이라 나를 부르며 중문을 달아 둘거라고 장난기 넘치는 농을 던지고 가셨다.
떠나온 서울집이 비좁았던 만큼 새로운 방은 비교적 넓게 느껴졌다. 대기업에서 만든 창은 더 컸고, 좋은 뷰는 아니지만 개방감도 더 컸다. 가구와 물건들이 새롭게 자리잡은 이 곳에서 나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쟁과 불안, 우울과 자책, 1등을 향한 끝없는 레이스에서 경기장을 빠져나와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다시 나를 쌓아 올릴 수 있겠다. 오랜만에 든 강한 확신이었다. 오랫동안 공간을 만드는 일이 했던 내가 공간의 힘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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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 며칠이 지났다. 아직은 서울집에서 잠시 본가로 놀러온 것같은 기분이지만 좋다. 가족과 더 가깝고 속세와는 멀어진 이 느낌이 마냥 좋다.
엄마와 데이트 겸 시내의 한 텐동집을 찾았다. 텐동을 드셔본적 없는 엄마께 먹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누나에게 보내라고 생색을 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나의 새로운 방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엄마도 평안하신 표정으로 내가 힘들어 할때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며 조금씩 나아지는 나의 모습에 안도가 된다고 하셨다. 기분좋은 식사였다.
이 모든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이사를 선뜻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내게 이렇게 따듯하고 안락한 새로운 방이 생긴 것이. 그런 소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내가 둘러 쌓인 것이. 비로소 밝은 해방을 느꼈다. 서울 밖을 나오니 비로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