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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밀려난 게 이렇게 좋을 수가

by 재민

“서울에서 밀려난 기분이 어때?”


서울을 떠나고 2주 만에 다시 왔을 때 들었던 질문이었다. 짓궂은 친구는 나를 환하게 반겨주며 말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나 이제 어떡하냐, 서울 사람 아니라서”


돌아온, 아니 이제는 놀러 온 서울. 친구와 서울에 관한 시답잖은 대화로 안부를 나눴다. 서울에 다시 온 기분이 어떤지. 경기도 끝에서 서울까지 오는 길은 힘이 들지 않았는지. 서울의 활기와 빌딩 숲이 그립지는 않았는지. 나는 다시 찾은 서울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코엑스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 코엑스에는 퇴근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유명한 별마당 도서관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종 장식들이 눈을 찌르듯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핸드폰을 꺼내 그 빛을 렌즈에 담기 바빴다. 친구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너는 서울에 살면서 이게 신기해?”


많은 사람들과 휘황찬란한 불빛 사이에 있으니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구경하자는 친구를 데리고 발 빠르게 별마당 도서관을 나와 퓨전 멕시칸 식당으로 향했다.


“서울밖에서 사는 것 중에 제일 좋은 게 뭔지 알아?”


나는 과콰몰레가 잔뜩 올라간 나초를 먹으며 친구에게 물었다. 역시나 처음 서울을 떠났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람이 적은 것이라고. 명확히는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는 빈도가 적은 게 좋다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서울 밖의 일상을 열거했다. 매일 걷는 길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지 않으며, 당연히 서로의 어깨가 부딪칠 일도 없고, 그만큼 급하고 바쁜 일들도 적다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겪어야 했던 지옥철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기에 느끼는 해방감까지. 내가 사는 동네에 지하철이 없기 때문이지만 어찌 되었든 큰 장점이다. 그 좁은 지하철 객실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려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서울은 사람이 많아서 활기 넘치는 게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나는 친구의 질문에 음료를 마시며 속으로만 대답했다. 서울살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활기는 피곤으로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특히 퇴근시간에 삼성역을 향하면서 보이는 수 백 가지의 얼굴과 표정들이 싫었다. 목적은 있지만 이유는 상실한 채 앞으로만 빠르게 나아가는 모습. 행복보다 성취를 위해, 과정보다 결과를 위해, 사랑보다 돈을 위해 움직이는 수 백 명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삐뚤어졌기 때문이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삐뚤어지니 나를 대하는 내 모습도 조금씩 삐뚤어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얼굴들이 싫게 보였던 것은 스스로를 반듯하게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메인으로 시킨 클래식 카르니타스 타코가 나왔다. 나는 곧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나는 새로 들어간 본가의 내 방이 서울에서 살던 원룸보다 넓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아량으로 본가 작은 방으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짊어지고 온 물건들이 방에 다 들어갈까 염려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주신 작은 방은 ‘작은 방’이 아니었다. 말만 작은 방인 이 방은, 방 크기뿐만 아니라 이전에 살던 서울의 원룸보다 창도 더 컸다. 천장도 더 높았고 붙박이장도 있다. 심지어 작은 화장실까지 딸려있다. 빽빽하게 들어선 빌라촌의 원룸에 살던 지난 6년보다 빽빽하지 않아서 좋다. 방이 커진 만큼 내 마음도 넓어지는 착각까지도 좋다.


“그거 정신승리 아니냐?”


“뭐든 승리하면 좋은 거지”


정신승리.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어떤 일이 생겨도 정신이 온전하고 ‘승리’한다는 것은 마음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좋은 승리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승리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카르니타스 타코를 한 입 베어 물며 흥미롭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침엔 거실에서 엄마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은 커피만 마시고 침묵하기도 한다. 평안함과 고요함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서울의 원룸이었으면 아침부터 노트북 앞에 앉아 별의별이야기로 가득 채운 뉴스레터를 읽거나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을 텐데, 엄마와 같이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새삼 대단한 승리로 느껴진다.


서울밖으로 밀려나면서 다섯 살 조카를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누나네 집은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종종 본가로 놀러 온다. 주말에는 같이 공원을 가거나 할먼네 밭에서 밭일을 한다. 매일 아침 길거리에서 표정 없는 수 백 가지의 얼굴이 아닌 다섯 살 꼬맹이 조카의 웃음을 볼 수 있어 좋다(가끔 엄청나게 떼를 쓰면서 울기도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 활기를 띄는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나를 지탱해 줄 가족이 필요했다. 서울에는 명확히 존재하지 않았던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 이런 게 정신승리라면 이보다 값진 승리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계산을 하고 나와 코엑스 안을 걸었다. 서울에 살 때 자주 왔던 곳이라 아직도 어떤 상점을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눈에 훤하다.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이 왔지만 항상 길을 헤맨다. 지도의 도움 없이 코엑스를 돌아다닐 수 있으면 서울을 떠나게 되는 걸까? 나는 친구에게 너는 절대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았으면 지하철로 20분이면 집에 갈 텐데, 이제 한 시간 걸린다고?”


“아니. 한 시간 반 정도”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또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붉은색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왔다.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새로운 나의 동네는 복작거리는 서울과 달리 평온하며 차분했다. 길에는 치워지지 않은 낙엽들이 쌓여 내가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냈다. 여기가 논밭이 펼쳐진 시골도 아닌데. 그렇다고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 도시도 아니지만. 나의 자리를 찾아낸 것 같다. 서울에서 밀려난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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