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서울에 살아야할까요?
수요일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와 통화했다. 지난 일요일에는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북페어에 다녀온 것을 이야기하며 서서히 나의 일상이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정신건강의학과도 2주에 한 번으로 변경했고 우울과 불안을 잠재워 주는 약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에 가서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은 적절히 섞어가며 하고 있다고. 비가 그친 맑은 가을 하늘처럼 나도 밝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헬스장에 간다. 한참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 거치대에 올려놓은 핸드폰 화면이 반짝이며 켜졌다. 집주인 할머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502호 총각 맞지? 내가 뭔 일을 해서 자네 살고 있는 집을 전세로 돌리려고 말이야. 자네 전세로 바꿀 수 있나?
전세는 얼마에 하시려고 하세요?
육 천인데 내가 돈이 좀 급해서 말이야, 자네가 바꿔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어디 가능 하겠나?
음…. 저는 육 천은 조금 힘들것 같아요.
그럼 자네도 이 집에 산지 오래 되었으니 한 달 안에 집 빼줄수 있나? 내가 돈이 급해서 말이야.
나는 빠르게 집을 알아보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헬스장 자전거 바퀴를 열심히 돌리면서 직방과 다방을 핸드폰에 다운에 받았다.
내 소설집 <실패기록집> 중 단편 소설 하나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한도윤에게 불행한 일이 한 번에 겹치며(그 중에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그의 일상이 무너져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었다. 비슷한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올해 5월 즈음 공황장애를 겪고 휴직 후 퇴사를 했다. 그리고 스페셜티 카페에 정직원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만에 우울증이 심해서 퇴사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해보겠다며 주3일 일하는 동네 카페 알바를 했다 손목 부상을 당하며 또 그만 뒀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집까지 바꿔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매 시간, 매 순간 상황과 사람들이 나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선택들을 했다. 나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들을 할때마다 나는 조금씩 떠내려가는 걸 느꼈다. 매번 삶의 기로에서 내가 직접 고른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운동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또 다시 삶이 주는 상황과 사람의 요구에 선택의 기로에 섰다. 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다르게 펑펑 울지 않았다. 현실은 픽션보다 더 가혹했지만 사람은 더 강하다는 걸 느꼈다. 대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메모장에 적어내려갔다.
1. 새로운 원룸으로 이사가기(같은 보증금과 월세).
2.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월세만 올리고 살기.
3. 안성 본가로 돌아가기.
그날 오후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네이버 부동산, 다방, 직방을 모두 뒤져 내가 갈 수 있는 ‘서울집’을 찾아 지도 이곳저곳을 헤맸다. 그중 살고 있는 동네에 괜찮은 매물이 있어 부동산에 연락해 바로 볼 수 있냐고 통화를 나눴다. 젊은 부동산 중계인은 당연히 볼 수 있다고 사무실 약도를 문자로 보내줬다.
부동산에 도착했을때 중계인은 그 매물이 그 사이에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예산의 매물은 요즘 없고 그나마 가성비 좋은 원룸이 있으니 한 번 보여주겠다고 했다. 찾아간 원룸은 햇빛이 들지않고 지금 집보다도 작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5분도 채 둘러보지 않고 돌아나왔다. 그리고 중계사에게 혹시 내 예산에 맞는 좋은 집이 나오면 꼭 연락해달라고 하면서 중계사와 헤어졌다. 다시 그 분을 볼일은 없을거라는것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와 메모장을 켜놓고 곰곰이 생각했다. 내 예산으로는 서울에 지금 살고 있는 수준의 집을 얻기는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집을 줄여가며 서울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1번 옵션을 메모장에서 지웠다.
계약갱신권을 사용할 수 있지만 같은 빌라에 사는 집주인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이며 이 집이 그만큼 마음에 드는 집도 아니었다. 2번 옵션을 지웠다.
그렇다면 3번, 안성 본가로 돌아가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내가 서울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방은 있으니까 언제든지 와도 괜찮아.
예상밖의 일을 선택하고 예상밖의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던건 사실이나 이런 상황과 이런 시점에 떠날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예상밖의 일이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 속 주인공과 다르게 나는 설레는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이 빽빽한 도시 속에서 의미없이 섞어 갈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 나의 상황을 보면 마치 서울에서 밀려나가는 것처럼 볼 수 있으나, 내가 마음 먹고 선택한 이상 이 일은 서울 탈출이 된다.
일상이 안정될 즈음에 또사시 예상 밖의 상황과 사람이 나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매번 최선의 선택을 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상황이 그렇다면 용기를 내야지.
예상 밖의 서울을 탈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