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동생들을 재워놓고 나와 대화를 할 때가 많았다. 어느 한날은 갑자기 내게 '외할머니랑 나랑 안 닮지 않았어?'라고 물어봤다. 여태까지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다. 외할아버지와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았기 때문에 그저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세구나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와 엄마와는 너무 달랐다. 엄마는 키가 크고 하얀 피부인데, 외할머니는 너무도 작고 왜소했으며 까만 피부였다. 눈코입을 생각해 봐도 단 한 군데도 닮은 구석이 없긴 했다. 그제야 외갓집의 친인척 모두를 생각해 보니 외할머니만 다른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진짜 외할머니는 어디 계신 건가. 엄마는 내게 그동안의 일을 풀어놓았다. 엄마의 진짜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딸딸딸아들. 전형적으로 아들을 낳기 위해 혼심을 다한 옛날 가족의 형태이다. 막내외삼촌을 낳은 진짜 외할머니는 산후풍으로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그 당시 엄마는 3살이었기에 전혀 기억이 없다고 한다. 진짜 외할머니는 키가 컸고, 햐얀피부에 일머리가 매우 좋아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던 분이라고 했다. 큰 이모가 말하길 진짜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와 외모가 똑같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당장 젖먹이인 막내 삼촌과 딸 3명을 돌볼 수 있는 계모를 찾았다. 이때 오신 분이 지금의 외할머니다. 이 집안에 오자마자 막내삼촌을 들쳐 매고 젖동냥을 다녀야만 했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자식이 아닌 아이를 4명이나 키워내야 하는 숙명을 선택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외할머니에게는 친자식 2명이 있었다. 친자식을 버리고 남의 자식을 키우러 타 지역으로 온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무당이 말하길 '너는 이제 곧 죽어, 죽기 싫으면 남의 자식을 키워서 명을 이어야 해. 그것밖에 살길이 없어.'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들은 외할머니는 중매쟁이에게 부탁을 해 엄마를 키우러 온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게 무슨 소설인가, 망상인가, 아니면 엄마가 아빠처럼 아픈 걸까?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엄마를 떠나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꿋꿋이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동네에서 동정과 동시에 멸시를 당하며 컸다. 엄마 없이 크는 애들이라 불쌍하다, 저 집에는 놀러 가지 말아라. 한날은 동네 친구와 놀고 있었는데, 당장 그 집에서 나오라며 친구를 끌고 나간 적도 있었다고. 외할머니는 외삼촌만 애지중지 키웠다. 외할아버지의 주문은 정말 애들만 키워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중에서 외할머니는 아들인 외삼촌을 열심히 키웠던 것이다. 나만해도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남자의 비율이 훨씬 많은 세대인데, 엄마세대는 오죽했을까 싶긴 하다. 모든 것이 외삼촌에게만 지원이 갔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쓰는 것도 전부다.
그래서 엄마는 외할머니의 기억보다는 증조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증조할머니가 딸들을 각별히 아껴주셨던 것이다. 학교에 다녀오면 장떡을 부쳐서 나눠주셨고, 제사가 끝나면 젤리를 챙겨서 밤잠이 많은 엄마에게 몰래 주곤 하셨다. 유독 엄마를 예뻐하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엄마는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희가 친자식이 아니니 이렇지 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친자식들을 찾아 헤맸다. 엄마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글쎄, 물론 외할머니의 뒤틀린 이기심이 친자식에게 상처 주고, 남의 자식까지 힘들게 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사실이다. 그러나 간간히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했던 행동들은 진심이 담긴 일화도 많다. 중학생인 엄마가 도시락을 놓고 가자 버스정류장까지 외할머니가 뛰어왔다. 이미 버스를 타서 사람들에게 끼여있는 엄마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러 버스까지 헤집고 들어왔다. 외할머니는 뜨개질을 잘했는데, 실을 사다가 4명의 옷을 직접 떠서 입혔다. 엄마의 기억에는 조끼도 있었고, 두꺼운 니트도 있었다. 가끔은 꽃 코사지를 달아 넣어줬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외지로 대학교를 갔을 때 밥솥과 쌀을 들고 방을 구하러 함께 나왔다. 방이 좁아 같이 자지도 못하고 버스를 타고 갔어야만 했다. 엄마가 결혼하고 나서는 먼 타지에 잘 있는지 궁금했다. 전화를 하고 싶은데, 괜히 친정에서 자주 연락 오면 보기 좋지 않다고 꾹 참았다. 그러다 얼굴이라도 봐야겠는지, 고춧가루와 쌀을 들고 타지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터미널에서 엄마의 얼굴만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돌아갔다.
외할머니의 사랑은 분명히 있었다. 상처받은 엄마가 잘 보지 못했을 뿐. 그녀가 죽지 못해 돌아와 우리를 키우기로 결심한 것은 외할머니의 이기심보다는 조금 나은 것일까. 어찌 되었든 엄마와 외할머니는 자식들을 키워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들만의 사랑을 주었고, 어떻게든 키웠다. 그 과정에서 자식이 상처받은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엄마는 자식으로서, 엄마로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