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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Sep 25. 2023

8. 아빠에게 맞고 큰 아빠

"셋 셀 때까지 안 오면 죽는다."


아빠의 어린 시절은 꽤나 부유했다. 지방의 유지였는데, 역사 앞에 큰 건물이 친가의 소유였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모자람 없이 컸다. 게다가 장남인지라 집안에서 지원해 주는 스케일도 남달랐다. 공부에 소질이 없던 아빠는 그 당시 돈 있는 집에서만 할 수 있다는 예체능을 했다. 몇 개월이 안되어서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그런 대학교를 입학한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굉장히 풍족했다. 



하늘은 전부를 주시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아빠는 정서적으로 빈곤했다. 아빠는 타고난 천성이 굉장히 여리고 부드럽고 정에 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역에 유지였던 할아버지는 아빠가 장남인만큼 포부가 크고 대담하게 크길 바란 것 같다. 아빠가 타고난 천성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바라는 아들은 따로 있던 것이다. 


겁이 많았던 아빠는 쉽사리 무언가를 도전하기 어려워했고, 적응하는데 남들보다 한참이 걸렸다. 이런 모습이 못마땅한 할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매를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매가 손에 잡히는 기다란 모든 물체라는 것이다. 한날은 옆에 있던 고무호스가 잡혔는데, 너무 힘껏 휘둘러 집안의 물건들까지 다 휩쓸어 버렸다. 아빠는 그때마다 구석에 숨거나 도망 다니기 일쑤였는데,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맞을 때까지 마구 휘저었다. 매가 보이지 않으면 손지검을 했는데, 그 손에 몸의 어딘가가 맞지 않으면 끝나지 않았다. 아빠는 그렇게 열심히 맞고 컸다. 



한 일례로 고모가 고모부와 결혼을 하겠다고 집안에 인사를 왔다. 고모부인상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결혼을 어렵게 성사시키고 고모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기 위해 몇 차례 찾아뵈었다. 원치 않는 결혼을 시킨 할아버지는 벽돌을 구해와서 고모부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피가 줄줄 흘렀다. 그 뒤로 고모부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고, 처가와 담을 쌓고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노로 표출했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 상상 초월하는 폭력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런 날이 지속되자 아빠는 고등학교 때 우울증에 걸렸다. 이미 몸집은 자신의 아빠보다 훨씬 컸고, 힘도 더 셌는데 어릴 때부터 맞아온 터라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던 것이다. 개를 묶어놓고 키우면 목줄을 풀어도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개구리도 가둬놓고 키우면 그 벽을 넘을지 모른다고 하질 않는가. 그만큼 환경에서 길들여지면 내가 저항할 수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 아빠는 그렇게 고등학교 내내 우울증 약을 먹었다고 한다. 




당시 오은영 박사님이 계셨더라면 절대 아빠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의 천성이 겁이 많고, 약하니 남들보다 느려도 지켜봐 주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잘하지 못한다면 옆에서 방향성만 알려주고 묵묵히 옆에서 함께해 주면 된다고 말이다. 조금 못해도 칭찬을 해주고, 해냈다면 격려를 아끼지 않았어야 했다. 잘못을 했다면 폭력보다는 따끔한 주의를 주고 안아줬어야 한다. 


아빠는 내게 그 고무호스가 무척이나 무서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릴 때 무척이나 많이 맞고 컸다고 했다. 나는 훗날 아빠가 자신의 아들을 때리는 장면을 무수히 많이 목격했다. 그것은 아빠가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가장 폭력적인 방법이었다. 당했던 폭력은 하는 폭력으로 자신의 아들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정서적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아빠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렇기에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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