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꽤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교실에서 가장 마지막 줄에 앉아야 했다.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지라 한 학급에 약 50명 정도가 있었다. 빼곡한 교실에 맨 뒷줄은 선생님과 거의 눈 맞춤이 불가능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일 년 내내 뒷줄에 있었다. 다른 애들은 한 번씩 앞줄로 가기도 하고 짝꿍이 수시로 바뀌고 하는데, 나는 뒷줄에서 좌우만 왔다 갔다 했다. 굉장히 이상했지만 선생님한테 말을 하지 못했다.
받아쓰기시간이 있었다. 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갔을 리가 없었다. '병아리가 마당에서 총총 뛰어다닙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장에 가끔 쌍자음이나 받침이 들어가는 단어의 조합으로 받아쓰기를 시켰다. 안타깝게도 받아쓰기장에는 시뻘건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가 내린 것도 슬픈데, 이번에는 넓적한 자가 내손에 번개처럼 꽂혔다. 선생님은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자로 때렸다. 가끔은 손이 부어올라서 연필을 잡는 것도 어려웠다. 기본 8대 이상씩을 매일 맞았는데, 손이 멀쩡한 게 이상했다. 엄마는 손이 부어서 오는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받아쓰기를 못해서 맞았다고 대답했다.
한 날은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전화가 왔단다.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선생님 찾아뵈었어요? 요즘 ㅇㅇ이가 많이 맞는다던데, 그거 봉투 안 드려서 그런 거예요. 얼른 학교 한번 찾아가 봐요.' 여기서 ㅇㅇ은 바로 나였다. 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뒤로 건네는 돈이 한 학생의 권력이 되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요즘 그런 선생님이 어딨어?' 하는 생각으로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일을 하고 있던 엄마는 평일에 시간을 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학교는 잘 다녀오니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데, 확실한 감정은 남아있다. 선생님은 나를 싫어한다. 보통 동물도 자신을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전부 안다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인간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정말 학교에 가기 싫었을 것이다. 가면 매일같이 맞기만 하는데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딨을까. 그렇지만 엄마에게 짐이 되는 건 더 싫었을게다. 나는 아침잠을 이기고 꾸역꾸역 일어나 등굣길을 나섰겠구나.
놀랍게도 이후에 나는 늘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든 선생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웬만하면 이름까지도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선생님만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그 선생님은 초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