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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Mar 01. 2024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연구원시절 친하게 지냈던 직장동료 선생님에게 연락이 갑자기 왔다.

내가 퇴사할 무렵, 나의 사수는 승진해서 다른 지역으로 갔었다.

그 사수가 다시 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왔단다.

그래서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2년 전 공공기관의 연구원으로 4년 동안 일을 하다가 퇴사했다.

공무원들의 조직이 나랑 안 맞기도 했고, 퇴사할 무렵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기도 했다.

그때 아빠가 돌아가셨고, 파혼을 했으며, 팀이 해체되었다. 이것은 불과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도무지 그 지역과 근무환경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박차고 나와서 나의 정신을 돌볼 시간도 없이 지역을 옮겼고

바로 일 년 동안 친구의 사업을 도와주러 스타스업에 들어갔다.

1년은 정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돈은 적게 벌고, 한마디로 열정페이로 일을 했다.

그럼에도 돌아온 것은 공황장애와 친구를 잃은 것이다.

친구는 사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도저히 납득이 안 됐다.

사적인 문제가 공적인 문제로 번져 사업을 같이 할 수가 없었다.

가족을 사업으로 삼고 있는데, 가족을 파탄 내는 일은 너무나도 모순적인 행태였다.


그렇게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작년 한 해를 폐인같이 지냈다.

인생에서 그렇게 처참할 수가 없었으며, 온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으며, 누구와도 만날 수가 없었다.

사회적으로 자체 고립을 선택했다.

그렇게 일을 했으니 작년 한 해 동안 계속 나에게 전화가 왔다.

일 년 동안 모든 업무를 내가 처리했어야 하니, 이후 사업에서도 나에게 연락이 오는 것이다.

강의를 해달라고 하는 전화가 올 때마다 퇴사했다고 웃으며 전했다.

그리고 전동료들에게 오는 연락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을 나를 위해서 보내고 나니, 조금은 기운이 차려졌는지 요즘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그 타이밍에 연구원 시절 동갑내기 선생님이 연락이 온 것이다. 잠깐 동료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녀는 공무원사회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온갖 위계질서와 암투가 있는 그곳에서 꿋꿋하게 잘 버텨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우직함과 묵직함 인내가 강한 사람이라 부럽기도 했다.


갑자기 나를 보자며 내가 있는 지역까지 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중간 지역을 정해 거기서 보자고 제안했다. 그녀와 그렇게 오늘 낮에 조우했다.

그렇다. 지금 이 글은 그녀를 만나고 와서 쓰는 뜨끈한 감정이 담겨있는 날 것의 글이다.


그녀는 연구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또 자신은 어떠한지 전해주었다.

내가 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전했다. 그때가 모두가 사이가 좋았었다고.

연구원끼리 다 같이 잘 지내려고 했던 것도 다 같이 뭉쳐서 으쌰으쌰 했던 것도

그 와중에 우리가 막내여서 서로 의지했던 것도 모든 것이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회고했다.

내가 나가고 나서는 모두가 개인주의가 되었다고 한다. 누구도 뭉치지 않고, 그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너무나도 얄밉게 이간질도 하고 업무시간에 개인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때도 사실 그런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까지도 선을 지켜서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다.

회사에 돈 벌러 왔지 친목질 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이간질하면서 서로 까내리면 그보다 피곤한 일이 없다.

게다가 똑같은 연구원이지만 그 안에서 어찌나 학연을 나누고 학위를 따지는지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나 내가 있던 조직은 석사가 기본이었고 모두가 박사 이상의 소지자들이며 연구소인 만큼 연구가 주된 곳이었다.

때문에 참으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밖으로 나와보니 그들의 행태는 좀 더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연구소를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도 다니고 있었으면 더한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긴 한다.

물론 나도 열심히 공부해 학위를 취득했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격증처럼 여겨졌기에 그들의 선민사상이 조금은 어이없었다.



그녀는 내가 2년 동안 있던 일을 듣더니, 많이 놀랐다. 정말 자기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 연구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했고, 지금도 전혀 다른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2년 전만에도 같은 막내생활을(고학력자만 모이다 보니 막내가 30살이었다.) 하고 있던 우리는 서로 다르게 살고 있다.

그녀는 연구자였던 나를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변한 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잘랐어요!!

구독자님 겸 작가님들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에 왔죠.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보니 정말 쉽지 않네요 ㅎㅎ 한 달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 보니 저의 시간이나 감정을 돌볼 시간이 없어요.. 인생이 늘 이렇게 돌고 도나 봐요 ㅎㅎ

제가 늘 가족들의 이야기만 쓰다가 커리어 이야기를 쓰니 조금 어색하긴 하네요. 그래서 설명할 내용도 많고... 압축을 해도 글이 길어지네요.

그래도 오늘의 감정을 브런치에는 꼭 남겨두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 시간도 저에게는 사치인데, 그래도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감정이니까요.

사치를 부려보고 있답니다. 일은 내일로..... 미뤄.... 아하핳.....


다들 좋은 연휴 보내시길 빌어요!!

그리고 3.1절의 의미도 한 번은 되새겨 봅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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