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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진 May 15. 2022

어린 스승 :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용기

 혼자 있을 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곧잘 울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잘 울지 않는다, 아니 절대 울지 않는다. 특히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 가끔 짜증이나 화는 내지만 우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내가 오래전 딱 한 번 학생 앞에서 운 적이 있다.


 다른 일을 하다 학원 강사로 전직해 어린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몇 해 안 됐을 때의 일이다.

 가르치던 고등학교 이학년 학생 중에 유독 느린 Y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정규 수업시간이 다 지나서도 그 작고 마른 애는 하원을 못하고 자습실에 늘 남아 있었다. 거기서 Y는 다 외우지 못한 영단어를 외운다거나 답을 찾지 못한 문법 문제와 름하며 (당시는 학원 시간 규제가 있기 전이어서) 밤 열두 시를 넘어서도 학원에 잡혀 있는 날이 허다했다. 나도 아직은 팔팔한 삼십 대 중반이던 시절이라,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을 다그치며 가르치는 일이 큰 문제가 되지도 않던 때라 가차 없었다. 데일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은  위너들이 당당히 하원하는 모습을 무참히 지켜보며 자습실로 향해야 했고 그 무리에는 예없이 항상 Y가 있었으며, 끝까지 남는 한 명도 늘 Y였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남아 있는 Y에게 맘이 많이 쓰였다. 아이들에 따라 암기 속도와 이해 속도에 차이가 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건데도 그런 아이를 배려하며 기다려주는 공교육 시스템이 부재한 대한민국이기에 어떻게든 속도를 끌어올려보려 Y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늘 실패했다.

 간간이 Y의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하며 아이를 학업 부진아라는 프레임 속에서 함부로 평가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죄인이었고 난 면죄부를 거머쥔 모양이 되었지만 차마 아이를 그만 등원시키라는 말까진 하지 못했다, 아이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신기하게도 안 좋은 인생의 일들은 2+1이나 1+1 패키지처럼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한꺼번에 불쑥 찾아든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2007년 가을쯤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까지 수업을 해야 했고 내신 대비 기간엔 일요일까지 꼬박 주 7일 근무를 해야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고등학교 영어시험은 아이들에게 암기시키고 준비해줘야 할 자료가 너무 많아서 잠을 줄여가며 수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잔뜩 예민해져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 이렇게 시험 때마다 매번 네다섯 개 학교의 내신 대비 수업을 이년 넘게 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번아웃 증상이 찾아왔다. 탈진한 몸에 불안, 분노, 우울 등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날 덮쳐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겨우 버티고 있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날 무너뜨려 놓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간 'MSN 메신저'가 2000년대 초중반엔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나 또한  지인들과 핸드폰 통화나 문자보단 메신저를 통해서 주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피곤에 쩔어 수업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오후, 친한 친구 녀석이 잘 쓰지 않는 예전 MSN 계정으로 돈을 꿔달라면서 말을 걸어왔다. 호프집을 하던 친구였는데 가끔 급할 때 돈을 빌려간 적이 있어서 난 별 의심 없이 당연히 친구 녀석이 또 귀찮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친구는 메신저로 이런저런 말을 해대며 전화는 받을 수 없으니 일단 최모라는 사람의 시티은행 계좌로 돈을 가능한 만큼 바로 보내달라고 독촉했다. 난 더 징징거리는 소리 듣기도 싫고 수업 준비에 맘이 쫓겨 이백만 원을 인터넷뱅킹으로 부쳐줬다. 보냈다고 메신저로 알려주자 친구(라고 믿고 있던 사기꾼)는 안 들어왔다고 다시 보내달라고 요구해왔다. 이상하단 생각에 출금 은행에 확인 전화를 했고 돈이 정상적으로 송금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말로만 듣던 피싱을 당한 거구나......

 



 피싱 사건으로 내 멘털은 바닥을 뚫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피싱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괴감이라는 새로운 부정적 감정이 더해져 번아웃 증상은 극도로 악화돼 갔다.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아이들의 2학기 중간고사 시험이 코앞이어서 무책임하게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 정신과 몸엔 잔인한 짓이었지만 어떻게든 아이들 시험은 함께 끝내줘야 했다.   


 Y가 다니던 학교의 막바지 내신 대비 수업을 해주던 날이었다. 당연하게도 Y는 열두 시가 다 된 시간까지 교과서 본문 암기를 못 끝내 혼자 자습실에 남아 악전고투 중이었다. 자습실을 담당하던 대학생 조교를 퇴근시키고 내 교실로 Y를 불렀다. 쭈뼛쭈뼛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 Y는 예의 그 자신 없고 위축된 얼굴을 내게 내밀고 꾸벅 절을 했다. 난 교실 의자에 앉으려는 Y를 교탁이 있는 앞쪽으로 오게끔 손짓했다. 그리고는 오늘은 샘이 너무 피곤하니까 빨리 끝내고 가자와 같은 말을 하려데 막상 입에선 엉뚱한 말이 쏟아졌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아이에게 상처가 될 심한 말들이었다.


 '낼모레가 시험인데 아직도 이렇게 빌빌대면 어쩔 건데? 샘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 너까지 보태지 않아도 샘 힘들다. 제발, 너......'


 그런데 갑자기 너,란 말 다음에 내가 하려던 말이 증발되더니 눈 주변이 뜨겁다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느닷없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어떻게든 자리를 피해 수습해보려던 순간 눈물과 한숨이 왈칵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한숨은 꺼억꺼억 격한 울음소리로 바뀌어 영락없이 어린애가 엄마 앞에서 혼나며 우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얼마나 고개를 떨구고 울었던 걸까. 겨우 울음이 잦아들자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휴지를 가져와 눈물과 콧물을 닦고 숨을 골랐다. 그때, '선생님'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Y가 날 불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Y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이런, 아이의 얼굴도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돼 있는 게 아닌가. 내 울음소리라고만 생각했던 꺼억꺼억 소리에 사실은 Y의 울먹임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놀라고 당황해 얼른 휴지를 더 가져와 아이에게 건네줬지만, Y는 그치기는커녕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을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Y야, 선생님 이제 괜찮아. 울지 마......'

 휴지를 손에 쥐어주며 겨우 꺼낸 말에 Y는 내가 살면서 잘 들어보지 못한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툭 꺼냈다.

 '선생님, 힘드신 거 다 알아요. 제가 다 알아요. 울지 마세요......'

 

 아무리 혼을 내고 난리를 쳐도 늘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눈만 껌벅이던 아이가, 잘하고 있단 칭찬 한 번 제대로 못 받아 본 이 아이가 되레 나를 위로하고 있구나. 귀찮고 힘들어서 떨궈낼 생각만 한 못된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며 다독여주고 있구나. 난 일어나서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Y를 천천히 안아줬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Y야, 미안하다. 진짜 미안해. 그리고 고맙다.'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Y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애가 선생님이 자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신단 말을 했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뻔뻔하게 괜찮다고, Y 성적은 제가 꼭 끌어올리겠다는 회피의 말만 늘어놓다 전화를 끊었다. Y는 내가 왜 우는지 그때 정확히 알진 못했을 것이다. 다만 내 슬픔에 공명하고 함께 끝까지 울어 주었다. 그리고 용기 있고 따뜻하며, 아주 큰 사람으로 내 옆을 지켜주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 문제와 분노에만 파묻혀 무너지거나 앞만 보고 달려갔을 뿐, 진심으로 학생이나 동료들을 위로하고 함께 울어주는 일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건 약한 태도고 그나마 한 줌 쥐고 있던 직업적 권위를 반납하는 짓이라고 맘 속으로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Y가 보여준 용기 덕분에 진정한 위로와 공감이 줄 수 있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한 없이 약해지는 순간 곁에서 그 무너짐을 바라보거나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함께 겪어주는 존재가 건네는 단단한 위로를 가르쳐 준 Y. 그는 그렇게 어린 스승으로 내게 왔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날 훌쩍 성장시켜줬다.


 다른 학원으로 이직을 한 후에도 몇 년간 꾸준히 Y에게서 스승의 날이면 안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언젠가 한 번은 '선생님, 요새도 학생 앞에서 울고 그런 건 아니죠? ㅎㅎㅎ'라는 맹랑한 톡을 보내오기도 했다. 어쩌면 Y에게도 나와 함께 울었던 그 순간이 자신을 발견한 소중한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함께 울었던 그날이 서로에게 진정한 스승이 되어준 우리들만의 두 번째 스승의 날로 아주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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