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과 스토리텔링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삼일운동이 몇 시에 시작했는지 알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지금껏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다고 자랑하던 녀석도, 예쁜 여자 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떠벌리던 녀석도, 운동으로 가꾼 멋진 몸을 뽐내던 녀석도, 숨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해를 아이구아이구(1919년)로만 외우기 급급했던 우리에게 시간까지는 무리였다. 질문을 한 친구는 기고만장해졌다.
"이게 주입식 교육의 문제라니까. 생각들 좀 해라. 모르면 추론이라도 해봐."
"...."
참다못한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시위를 언제 하는지 알아? 보통 밥 먹고 해. 밥을 먹여야 몇 시간 동안 시위를 할 수 있지 않겠냐. 게다가 삼일운동은 생사가 어찌 될지 모르는 독립운동이야.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가족과 식사는 해야 하지 않겠어?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이 있는데 저녁 먹으면 어두워지니까, 저녁은 제외하고. 그럼 남은 건 아침과 점심인데, 삼일운동처럼 큰 이벤트는 준비할 것이 엄청 많았을 거야. 그래서 아침에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거야. 고로 점심 먹고 나서야."
"그럼 한 시야?" 한 친구가 말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교통수단이 열악했어. 일본 순사를 피해 걸어서 오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게다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식사인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겠어? 족히 두 시간은 걸렸을 거야."
"그럼 두 시네?"
"고려할 것이 한 가지가 더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항상 늦는 사람들이 있어. 기다렸을 거야. 하지만 변절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기껏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 거야. 그래서 정답은 세 시야."
그 녀석의 말이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모두 꾸며낸 이야기였으리라. 당시에는 특이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셜록 홈스 납셨네'라고 조롱까지 했던 거 같다. 삼일운동을 저렇게 가볍게 이야기해도 되나 하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 친구야 말로 사업가의 자질을 타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스토리텔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넷플릭스의 창업 스토리는 유명하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영화 '아폴로13'을 반납하면서 블록버스터에 40불이나 되는 연체료를 지불하게 된다. 이런 비즈니스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그는 DVD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 넷플릭스를 창업한다. 드라마틱하다. 앞뒤가 딱딱 맞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훗날 공동창업자인 마크 랜돌프가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고백했지만(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른다.), 이미 넷플릭스가 유명해진 이후의 이야기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마켓컬리의 공동창업자 김슬아 대표가 창업을 하게 된 것도 개인적인 장보기에서 느낀 불만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 한의원의 창업스토리는 진짜다.(물론 리드 헤이스팅스도, 김슬아 대표도, 모두 진짜라고 믿고 있다.) 연애 기간 10년, 결혼 기간 10년, 도합 20년 동안 내가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잘 안다. 아내는 월경전증후군으로 꽤 오랫동안 고생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너는 왜 한 달에 반은 아파?"라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하니, 심하긴 심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을 괴롭힌 통증이 아내를 한의사로 만들었다. 화려한 패션계를 미련 없이 떠나게 했다.
여자라서 힘든 건 아내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언니들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원래 그런 건가 보다' 하고 참았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왜 여자라서 아파야 하지?', '매월 반복되는 통증을 참아야만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아내는 사람이 중심인 한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한의사가 된 이후로는, 20대의 어리숙한 자신에게 말하듯, 환자들에게 "참지 마세요."를 외치고 있다.
진심이 통한 것일까? 아내의 글과 진료에 대한 그녀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가끔은 팬덤인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환자들이 주는 (가벼운) 선물이 끊이질 않는다. 때론, 격하게 공감하기도 한다. 일부 민감한 주제의 글이 공격을 받을 때면, 그녀들이 댓글을 달아 대신 해명해 주기도 하니 말이다. 심지어는 우리의 미션을 대신 전파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잘 짜인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진정성이 한 스푼 더해지면, 스토리는 더욱 강력해진다. 자기 고백 같이 잔잔한 아내의 글이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