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일하고 있습니다.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by 날큐

삼국지에서 조조는 유독 문신에게 박하다. 평소에 인재를 후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의아하리만큼 냉정하다. 당대의 수재라 불렸던 예형도 말 한마디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공자의 자손으로 한때 제후였던 공융도 조조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했다.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한 것 역시 조조였다. 반면, 무관들에게는 너그럽기 그지없었다. 전쟁에 크게 패하고 온 장수에게도 "병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다.(병가지상사, 兵家之常事)"라며 온화하게 말할 뿐이다.



조조는 문무에 모두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굳이 따지자면 문관에 더 가까웠다. 조조가 이룬 업적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그가 전장을 누빌 동안 잠시 짬을 내서 쓴 시라고 하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조조가 문관에 더 엄격했던 것은 아마 스스로의 성향이 문관에 더 가까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참 아이러니하다. 같은 부류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부류에게 더 끌리니 말이다.







스타트업은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한다. 창업가의 자질과 함께 초기 멤버의 구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개발자만 5명인 곳보다는 마케터, 개발자, 기획자, 관리자 등 다양한 인재로 구성된 창업팀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보이는 숫자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 한의원의 창업자는 '아내'와 '나'이다. 우리는 다르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두 조각 퍼즐처럼, 서로의 다른 점들이 정확하게 드러 맞는다.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로의 장점에 기대고 의지해왔다. 어쩌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우리 팀의 가장 큰 강점일지도 모른다.



우선 성격부터 다르다. 아내는 신중하다. 공감을 잘한다. 나는 빠르다. 논리에 강하다. 아내는 쉽게 결정하는 일이 별로 없다. 생각을 항상 묵혀둔다. 나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별로 없다. 생각이 나면 해야 한다. 다른 건 성향만이 아니다. 커리어도 다르다. 아내는 한의대에 입학하기 전, 글을 쓰는 일을 했다. 주로 혼자서 일을 하였다. 나는 기업 재무팀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함께 하는 일에 능숙하다. 이렇게 다른 둘이 5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좋을 때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좋았다. 업무 분장부터 딱딱 맞아떨어졌다. 아내는 진료 관련한 것들을 맡았다. 전직 패션 에디터답게 뛰어난 기획력을 보여주었다. 그중 처방한 한약과 함께 보내는 복약안내서는 '여자라서 아픈' 그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하였다. 콘텐츠도 아내가 담당하였다. 우리의 소중한 예비 고객들은 한의원과 친하지 않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치료가 있는지도 모른다. 월경전 아픔이 찾아오면 참고 참다가, 안 되겠으면 진통제로 버틸 뿐이다. 월경전증후군만이 아니다. 환자들이 운영팀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한의원에서 이런 치료도 해요?" 하니까 말이다. 그런 그녀들에게 우리는 알려야 한다. '충분히 좋아질 수 있으니, 참지 마세요.'라고. 그녀들을 계몽(?)하는데 아내는 최적화되어 있다. 스스로가 페르소나인 데다가 글쓰기 능력까지 갖췄으니 말이다.



나는 전체적인 운영을 담당하였다. 초기에는 그리 대단치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많았다. 개원 전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니, 100개가 넘었던 기억이 난다. 각각 담당자를 정하고(그래 봐야 대부분 우리 둘이었다.) 기한을 정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했다. 개원 후에는 좀 더 중요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인원을 늘려야 하는지, 늘린다면 언제쯤 늘려야 하는지, 공간을 확장해야 하는지, 확장한다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 한의원의 존폐와 관련된 문제들을 제기하며 아내와 함께 결정해야 했다. 자금계획도 세워, 돈이 모자라면 빌리고, 돈이 남으면(상당기간 동안,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빌린 돈을 갚을 것인지, 투자를 할 것인지, 투자를 하면 어느 부분에 투자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문제는 한의원의 성장이 내 마음속의 선로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을 때쯤 찾아왔다. 좋을 때는 그렇게 든든해 보였던 나와는 다른 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 의견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더 했을 것이다. 논쟁에서 직감이 논리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아니 근거가 있으면 직감이 아니다. 아내의 의견에는 숫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의견은 대부분 숫자로 무장되어 있다.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치열했던 논쟁이 끝나면 항상 의문이 남았다. 진정 한의원을 위한 것이었을까. 서로의 귀한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닌가. 의문과 함께 밀려드는 건 승리의 쾌감이 아닌 씁쓸함과 후회뿐이었다.



변화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책 한 권에 생각이 바뀌었다. 야마구치 슈가 쓴 책이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우리는 직감이 필요한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직감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대부분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엘리트들이고, 이들은 근거가 없어 보이는 직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뜨끔했다.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엘리트라는 것만 빼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성과 논리에는 정답이 있다. 그래서 기업들은 모두 비슷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차별화되기 어렵다.' 다시 한번 뜨끔했다. 내가 한의원을 망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까지 밀려오는데, 저자는 친절하게도 해법까지 일러준다. '직감에 강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논리에 강한 사람이 이를 검증하고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숫자와 친하지 않은 아내의 직감을 존중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금요일 오후 시간을 비워둔다. '달과 산'이라는 모임 때문이다. 멤버는 고작 둘이다. 아내와 내가 전부이다. 우리는 금요일 한 시가 되면 집 주변에 있는 산으로 등산(산책 수준이다.)을 간다. 중간에 들르던 맥주집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규코스로 편입되었다. 모임을 시작한 후 벌써 20여 주가 지났지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하늘도 우리를 도왔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이상하리만치 금요일 오후가 되면 비가 그치거나 이슬비로 바뀐다. 산책을 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동반자에게, 혹은 사업의 동반자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뭐 대단치 않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상하게도 '달과 산' 이후로는 우리에겐 다툼이 없다. 좀 과장하면 싸우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 더군다나 서로 성향이 다른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가정에서의 일과 한의원에서의 일의 경계가 흐릿한 탓에, 아내의 힘겨운 토로에 위로해야 하는지, 아니면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헷갈렸다. 내가 헷갈리니 아내도 헷갈렸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바랐을 뿐인데, 냉철한 솔루션이 나오니 말이다. 앞으로의 여정도 만만치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달과 산'의 회차가 쌓여갈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는 마음은 깊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강점이 빛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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