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 하는 것'을 안 한다는 것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by 날큐

'남들도 다 하는 것'은 유혹적이다. 초보 사업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업은 결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정은 '남들도 다 하는 것'과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초보들은 대개 '남들과 다르게'를 외치며 '남들도 다 하는 것'을 한다. 생각이 단단하지 못해서 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새내기들에게는 아직 현장에서 하나하나 쌓은 '진짜' 데이터가 없으니까 말이다. 간혹 자신의 직감을 믿고 밀어붙이는 용기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용기와 무모함의 경계는 흐릿하다. 어렵게 짜낸 아이디어가 '남들이 다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한 마디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대담한 통솔자(ENTJ)라서 그랬을까? 우리는 처음부터 '다르게' 시작했다. 우선 환자층에서부터 숨길 수 없는 반골 기질이 드러난다. 한의원과 친하지 않은 30~40대 여자들이 타깃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새로운 먹거리인 추나치료를 몇 년 동안이나 하지 않았다. 한의사들 사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는 입원실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 흔한 네이버 광도도 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랴. 개원 당시만 해도 주 6일 근무가 당연시되던 업계에서 주 4일 근무를 고수하며 직원수가 10명이 넘게 되었다. 이쯤 되면 한의원계의 이단아라 할 만하다. 하지만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오던 우리도 버리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바로 할인 이벤트이다.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대표는 순간적으로 적정 가격을 산출해낸다. 아마 본인도 모르는 사이 메뉴, 입지, 원가 등을 입력값으로 하여 가격이라는 출력값이 나오는 머릿속 로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수년간 쌓아온 양질의 경험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백종원이 아니다. 게다가 팔고자 하는 것이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라면 가격을 정하기가 더욱 어렵다. 결국 업계에서 통용되는 가격 수준을 참고하게 되는데, 여기서 변수는 할인이다.



실구매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할인은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경제학 이론에서는 구매자별로 사고자 하는 최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때 이익이 극대화된다. 가격이 원가만 넘어선다면 말이다. 하지만 같은 상품을 소비자 별로 다른 가격에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사람이 만원에 사는 물건을 이만 원에 사는 바보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판매자는 물건을 사는 과정에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끼워 넣는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싸게 사고 싶은 사람에게는 싸게 파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라이브 쇼핑 시간에 맞춰서 영상을 시청하는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할인을 해준다. 세일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에 미리 사는 불편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할인을 해준다. 쿠폰을 발행하여 다운로드하는 귀찮음을 감수하는 사람에게는 할인을 해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할인은 일단 효과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별생각 없이 따라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인간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생존을 위한 본능인지도 모른다. 밤에 사냥에 나서 토끼 한 마리를 더 잡는 것보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을 위험이 생존에 더 결정적이니까. 진화심리학까지는 차치하더라도, 할인을 하면 소비자의 마음속에 준거점이 생긴다는 점은 분명하다. 심리적인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이 기준이 중요하다. 할인을 통해 얻는 효용보다 할인이 끝나고 정상가로 구매했을 때의 마음속 손실에 더 민감하다면 할인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아우디는 몇 년 전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파격적인 할인을 해주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회사에서 제시하는 정가를 아우디의 가격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비자들 마음속에 준거점이 생긴 것이다. 이는 브랜드 위상과 직결된다. 이제 아우디를 독일 3사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한의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달의 이벤트라는 할인 이벤트를 해왔다. 매달 한 가지 치료 프로그램을 정해서 할인을 해주는 것이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벤트를 하기 때문에 할인의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리브영도 정기적으로 할인을 하는데 잘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이달의 이벤트를 폐지했다. 한의원의 주력 프로그램은 정찰제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미 환자들 마음속에 준거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당분간 매출에 타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남들도 다 하는' 할인 이벤트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백화점은 사양의 길로 접어든 지 오래다. 그런데도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오픈해서 큰 성공을 거둔 백화점이 있다. 바로 더현대 서울이다. 특이한 점은 그들의 접근법이다. 이름, 입지, 층별 구성 등 많은 부분들이 기존 백화점의 성공 공식과는 정반대이다. 오픈을 준비했던 실무팀은 한 인터뷰에서 최대한 기존 사례를 벤치마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유력 경제지 기사의 제목이 '한국 백화점 다움을 버리다' 였을 정도였다.



'남들과 다르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강한 마음은 때로는 엄청난 통찰력보다는 사소해 보이는 데이터에서 올 수도 있다. 직접 쌓아가는 '진짜' 데이터에서 말이다. 나만의 '진짜' 데이터를 쌓아가고 싶다. 살아 있는 데이터는 통계 사이트나 분석 보고서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데이터가 쌓인 깊이만큼 나의 통찰력도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때쯤이면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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