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덜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길을 요구해 왔다. 수학에 아무리 뛰어나도 정해진 점수 이상은 받을 수 없었다. 반면, 못하는 과목이 있으면 안 된다. 평균 점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학과에 응시했어도 예외는 없다. 대학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두루두루, 어느 정도 잘하는 인간을 선호했다. 젊은 스티브 잡스가 투자를 받기 위해 국내 모 대기업을 방문했을 때, 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만으로 빈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가 아니던가.
어려서부터 평균을 지향하는 사회에 반항해 왔다. 영어는 아무리 해봐야 미국 사람한테 안된다는 (말도 안 되는) 신념으로 영어 공부는 최소한으로만 하기도 하였다. 반면 잘하는 과목인 수학에는 집착하였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몇 과목을 묶어서 한 번에 시험을 치르는 특이한 방식이 있었는데, 하루는 수학과 공업이 짝을 이루게 되었다. 수학은 좋아하기도 했고 자부심마저 있었던 과목이었다. 반면, 공업은 이걸 왜 배우나 하는 의심과 함께 마지못해 최소한의 (시험 전) 공부만 하는 과목이었다. 한 마디로 수학은 잘했고, 공업은 못했다. 그런데 평소에 자신 있었던 수학 시험이 이제껏 격지 못한 난이도로 출제되었다. 결국 안 풀리는 수학 문제 몇 개를 끝까지 붙들고 있느라 공업 시험지를 백지로 내게 되었다.(물론, 객관식은 찍었다.) 평소에 그토록 강조하던 효율도'잘하는 것을 잘하자' 앞에서는 무시된 것이다. 이 정도면 하나의 신념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나의 신념은 한의원에서도 꺾이지 않았다.(아니, 꺾이지 않았었다.) 정삼각형의 인재보다는 한쪽 모서리가 뾰족한 사람을 선호했으며, 직원들에게는 입버릇처럼 '잘하는 걸 잘하자'라고 이야기했다. 한의원은 철저하게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강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었다. 아마 다니던 회사에서 문어발 식 확장의 폐해를 경험한 것이 나의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었으리라.
추나치료는 나의 신념에 도전장을 낸 가장 강력한 녀석이었다. 아내와 의견이 다른 채로 상당 기간 팽팽히 대립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추나치료는 몇 해전 건강보험치료로 편입되면서, 정체되고 있는 한의원들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었다.(아쉽게도 여자 원장들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기본적인 수가가 높은 데다가, 대표원장이 직접 하지 않고 부원장이 하는 경우도 많아 확장 가능성도 있었다. 일부 한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한의원에서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개원부터 3년 정도를 추나치료를 하지 않고 버텼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 한의원의 힘은 공감으로부터 나온다.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환자들과 똑같이 '여자라서 고통받고 있는' 요즘여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환자들에 대한 애착이 있다. 그녀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이것이 환자들이 우리 한의원을 친절하면서도 편안하게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초창기 슈프림은 그들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스케이트) 보더들만 채용했다고 한다. 우리 한의원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들과 같은 또래의 여자들만 채용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단점도 있다. 아무래도 힘으로 하는 치료에는 약하다. 여성질환 치료와 달리, 추나치료에는 힘이 필요하다. 대부분 남자가 여자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수도 남녀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아내는 추나치료를 못하기 때문에(할 맘도 별로 없다.), 부원장들의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의 품질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한의원이라는 자영업을 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우리에게, 추나치료는 계속해나갈 수 없는 성격의 치료이다.
처음 몇 년은 그럭저럭 잘 버텼다. 하지만 한의원 확장으로 비용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코로나가 우리를 매섭게 몰아 대면서, 나의 신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실의 성장곡선이 내 마음속의 성장곡선과 멀어질수록, 나의 신념은 말랑말랑해져 갔다. 결국, 추나치료를 여성질환과 접목시킬 수도 있다고 합리화하며(실제로 여성질환 치료에서도 추나를 활용하는 한의원들이 적지 않다.) 추나치료를 하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잘하는 것을 잘하는 길에서 이탈하고야 말았다. 이젠 못하는 것을 얼마나 덜 못하는가를 고민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추나치료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지금은 추나치료에 특화된 부원장을 채용해서 태생적인 힘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못하는 것을 덜 못하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돌린다면 지금의 나는 일 년 전에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신념을 지키는 쪽이었을 거라 믿고 싶다. 하지만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자신감은 뚝뚝 떨어진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스타트업은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다. 시행착오를 겪은 신념은 보다 강력해진다는 것을 믿고 싶다. 그래야만 예전처럼 '잘하는 걸 잘하자.'라고 직원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