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냐? 수익이냐?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by 날큐

그땐 알지 못했다. 중국의 일이거니 했다. 처음에는 '우한폐렴'이라고 불렸다. 곧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하였다. 대구는 유령도시가 되어 갔다. 공포가 확산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리는 한산해졌다. 한의원 주차장도 한산해졌다.



그 무렵 한의원을 확장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내가 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한 유명 팟캐스트에 출현하게 되었다. 프로그램과 잘 맞았는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약 상담을 위해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마침 확장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천성이 경주마여서 였을까? 대담한 통솔자(ENTJ)라서 그랬을까? 옆 점포를 덜컥 계약해 버렸다. 한 동안은 신이 났었던 것 같다. 지난 2년 간의 한의원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엑셀을 모눈종이처럼 만들어서 설계를 직접 하기도 했다.(결국 2년도 안돼서 추가 공사를 했다.) 직원도 3명이나 더 채용했다. 인테리어가 끝나고 확장된 공간을 오픈한 시기는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2월이었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논쟁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업에서 규모가 먼저냐, 수익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하다 보면 규모와 수익 중 어떤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그것도 여러 번 찾아온다. 논점은 명확하다. 성장을 통해 기회를 선점하느냐, 수익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느냐 이다.



한의원들은 보통 효율을 추구한다. 어느 정도 수익이 발생하는 매출 수준이 되면 성장하려고 하기보다는 비용을 줄이는데 신경을 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시장이 정체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장이 미미한 시장에서는 생존이 중요하다. 살아남는 자가 시장을 나누어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아니, 우리는 달라야 했다. 미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여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라는 미션의 대상은 특정 동네에 살고 있는 일부가 아니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이들을 위해 진료하고 치료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기조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션이 다르다 보니 비전도 다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전도 '성장'을 지지한다. 아내가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한정적이다. 이것만으로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자영업자가 아닌, 스타트업이 되어야 했다. 아내의 진료가 시스템이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야 했다.스타트업을 창시한 에릭 리스의 스승인, 스티브 블랭크는 스타트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스타트업은 확장, 반복, 수익창출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임시 조직이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성장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십수 년간 적자를 보며 규모를 키워왔던 쿠팡을 보라. 증시 상장을 통한 열매는 달콤했지만, 걸어온 길을 보면 김범석 대표의 강인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나마 쿠팡에게는 손정의 씨라는 위대한 동반자(투자자)가 있었다. 우리 자영업자의 뒤에는, 화창한 날 우산을 팔고, 비 오면 우산을 뺏는 은행이 있을 뿐이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코로나라는 놈은 끝났나 보다 하면 우리를 더 세게 몰아쳐댄다. 하지만 의지만은 쿠팡 못지않다. 지금도 성장을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요즘 여자들에게 사소한 불편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의원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한다. 성장을 택한 덕에 아직도 10년이 넘은 차를 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미션을 포기하지 않고 비전에 다가가는 것이 멋진 차에서 내리는 하차감보다 나에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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