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by 날큐

기업을 사고파는 일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호텔리어'라는 드라마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주인공인 배용준 씨는 기업사냥꾼이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회사를 사서 정상화(?) 한 후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파는 일을 한다. 시간이 지나 경영정상화 업무를 담당해 보고 나서야 그 비정함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특히 일하는 방식은 매혹적이었다. 주인공은 집에서 일한다. 20여 년 전에 자택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도 유연하다. 지금으로 치면 프로젝트성 조직이다. 일거리가 들어오면 팀을 꾸리고 끝나면 흩어진다. 팀원 하나하나는 일당백이다. 유능하다. 어지간한 일은 알아서 처리한다. 주인공은 혼자 살기에는 말도 안 되게 큰 집의 거실 소파에서 통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필요한 지시를 하면 그만이었다.



필드에서 기업인수합병 업무를 하고 있는 동아리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집에서 일하지도 않았고, 조직이 유연하지도 않았으며, 프로젝트를 마치면 자유롭게 떠나지도 않았다. 주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기업가치평가(Valuation)에 집중할 뿐이었다. 팔고자 하는 기업의 가격을 매기는 일이다. 이게 상당히 복잡하다.



이론상으로 기업의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기업의 절대적인 가치를 계산하는 것이 그중 하나인데, 방법은 이러하다. 먼저 기업이 향후에 발생시킬 수 있는 현금흐름을 추정한다. 이때 반드시 계속기업(망하지 않고 계속된다는 회계용어이다.)을 가정해야 한다. 추정한 현금흐름을 현가로 할인한다. 현재가치로 바꾼다는 뜻이다. 현가로 할인된 금액을 모두 더한 금액이 기업의 가치이다. 우리나라 말인가 싶다. 이것이 절대가치평가법의 첫 번째 문제이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너무 어렵다. 지나치게 복잡하다. 엑셀 시트가 많아서 계산을 돌리면 버벅 거릴 정도이다. 뿐만 아니다.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가정이 들어간다. 물론 똑똑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현재 정보들을 감안하여 논리적으로 추정하겠지만, 추정은 추정이다.



알아듣기 어려운 가정으로 꽉 찬, 엑셀 시트로 추정한 가격만으로 수천억 원, 많으면 수조 원을 태울(돈을 쓴다는 의미이다.) 회장님은 없다. 그래서 대게 절대가치평가와 함께 상대가치평가도 병행한다. 상대가치평가는 비교하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방식과도 비슷한데, 최근 거래가를 바탕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같은 아파트 1층에 있는 집이 얼마에 팔렸는데 우리 집은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고 층수도 로열층이니 가격이 조금 높다. 뭐 이런 식이다. 복잡하지 않다. 직관적이다. 하지만 기업은 아파트가 아니다. 거래가 많지 않고 규격화되어 있지도 않다. 상대가치평가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가격은 중요하다.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외로 가격을 쉽게 정해 버린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그렇다. 남들이 하는 대로 가격을 결정한다. 내가 제공하는 재화의 가치가 얼마인지, 원가는 얼마나 드는지, 타깃으로 삼고 있는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어떠한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따라가기에 급급할 뿐이다.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자영업을 시작하면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 가격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고민해봐도 뾰족한 수도 없다. 그러니 그냥 정하고 만다.



우리 한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원 초기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한약 가격을 정해버렸다. 이럴 거면, 그 두꺼운 다모다란 교수의 '밸류에이션'은 왜 읽었나 싶다. 가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개원하고 3년이 넘어서였다. 한의원의 진료시스템은 여느 한의원과 다르다. '진단이 치료의 전부이다.'라는 철학으로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진료 전 검사가 다양하고 문진표도 제법 길다. 상담시간도 길다. 운영팀에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만큼 상담한다. 때로는 한 시간이 넘어갈 때도 있다. 뿐만 아니다. 고민되는 처방이 있으면 별을 보며 퇴근하기도 부지기수이다.



환자에 대한 아내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처방한 약을 보낼 때마다 환자 별로 다른 복약안내서를 같이 보낸다. 환자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왜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 이 약을 먹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 어디까지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지, 앞으로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자세하게 쓴다. 특별한 홍보 없이 소개만으로 약 처방이 늘고 있는 지금을 만든 일등공신이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글 쓰는 것이 직업이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나 같은 사람은 하루 종일 복약안내서만 써도 다 못해낼 정도의 업무량이다.



사업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아내의 시간은 한의원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자산을 쓴다는 것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사용한 대가로 임차료를 내지 않는가? 같은 이치이다. 비용이 발생했으면 그에 걸맞은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남들보다 많은 자원을 사용하도고 동일한 대가를 받아왔던 것이다. 문제는 아내의 수고를 정량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가치평가처럼 여러 가정을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짜 맞출 수는 있지만, 사업에서 멋지게 보이는 건 의미 없다. 우리가 제공하는 재화가 우리가 원하는 고객(환자)들에게 얼마의 가치를 줄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얼마 전 한약 가격을 올렸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이다. '원포원(one for one)'을 외치던 탐스슈즈도 결국 무너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자원이 많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가격을 높일 수는 없다. 소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환자들의 증상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가격을 올리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나, 그건 내 생각이다. 평가는 환자들의 몫이고, 이젠 그 평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가치평가를 위한 복잡한 엑셀 시트는 없었다. 가격을 산출한 절대적인 근거도 없다. 다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고,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을 감안하여 가격을 결정했을 뿐이다. 논리와 이성의 영역에서 바라보면, 가격 결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일이 된다. 하지만 직감과 감각의 영역에서는 단순할 수 있다. 이번에는 직감이 논리를 이기기를 기대해 본다. 복잡함을 경험한 단순함은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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