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냐?"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퇴사를 하면 아쉬운 것들이 꽤 있다. 우선 동료들이다. 같은 욕구불만(?)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이랄까. 뭐 이런 게 있었다. 가끔 당시 함께 일하던 선후배들을 만날 때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질감이 느껴진다. 더 이상 그들의 세상에 녹아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김초엽 작가가 우빛속(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묘사한 DM(릴리 다우드나)의 얼굴에 있는 얼룩이 이제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얼룩이 싫어서 떠나기는 했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복지도 아쉽다. 이젠 건강검진도 내 돈으로 해야 한다. 이게 만만치 않다. 생각해보면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에 급여 외에도 재정적인 혜택을 꽤 누렸던 거 같다. 아플 때, 슬플 때, 심지어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늘 회사가 함께 해주었다. 평생 담배를 한 개비도 피워본 적이 없는 내게도 금연 지원금을 주었을 정도니 말이다. 이젠 회사가 제공하는 아늑한 그늘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간의 자유를 얻었으니 이 정도는 포기할 수 있지만 명함의 편리함을 잃었다는 것만은 못내 아쉽다.
연예인들은 명함이 없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얼굴이 명함이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이 알려진 기업을 다닌다는 건 참 편리하다. 명함 한 장이면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다. 수십 년 동안의 소중한 인생을 작은 종이 쪼가리 하나가 대변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리하기도 하다. 내가 나를 설명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쳐서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된다. 지나치면 구차해지고, 모자라면 저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공자라면 적정 지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중용, 中庸), 나는 아직 부족해서인지 쉽게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고 만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내 커리어는 한의원에서 일하는 것과 잘 연결되지 않는다. 설명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어쩌면 궁금한 체하는 걸지도 모른다.)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나마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낫다. 학교 동기들이나 전 회사 동료들이 '왜 한의원에서 일해?'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면 매우 곤란하다. 지금은 그냥 한의원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초반에는 자격지심인지 꽤 그럴싸한 설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명함이 없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사무실을 덜컥 계약해 버렸다. 10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꽤 훌륭했다. 행정구역 상 위치는 서교동 끝자락이었는데, 실제로는 망원역과 합정역 중간쯤이었다. 홍대 근처라서 그런지, 신축건물이라 그런지, 힙한 분위기가 있었다. 통창에 작은 발코니도 있어서 작은 사무실 특유의 답답한 느낌도 덜했다. 무엇보다 사무실은 나에게 명함이 주는 것과 비슷한 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빈 공간에 하고 싶은 짓들(?)을 맘껏 했던 거 같다. 우선 구글 창립 초기에나 있을 법한 안마의자가 떡하니 있었다. 한쪽 벽면은 책장으로 짜 넣어 마치 유명 학자라도 된 듯한 기분을 즐겼으며, 발코니에는 큰 화분을 여러 개 놓아 장시간 일할 때 눈이 피로해질 것을 대비했다. 소파 위 벽면에는 갤러리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사진을 걸었다. 기하학적 문양의 화려한 카펫도 잊지 않았다. 책상 주변은 더욱 가관이었다. 듀얼 모니터 신봉자답게 로봇처럼 생긴 듀얼 모니터 거치대가 있었으며 길이가 2미터나 되는 책상 양쪽에는 내 키만 한 모니터 스피커 거치대가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무실이 작아서 프로젝트를 설치하는 것을 포기한 일이다.
명분은 이러했다. 한의원 직원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해야 하는 실무도 실장에게 상당 부분 넘긴 터라 꼭 비싼 한의원 공간을 차지하며 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른 감은 있었지만 사업으로 확장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마침 아내도 진료가 없는 날에는 책을 쓰기 위해 카페를 전전하고 있었다. 며칠이라도 같이 일할 수 있다면 시너지가 날 것도 같았다.
불행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사무실을 오픈하고 일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코로나 거리두기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한의원은 코로나가 시작할 무렵 확장한 상태였다. 다행히 처음에는 코로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곧 우리 한의원도 매출이 감소하며 아내가 진료를 6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무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쓰는 만큼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더 일찍 출근해서 더 늦게까지 일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무실 비용이 쌓여가는 만큼 나의 회의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17개월 만에 나의 소중한 안마의자를 부모님 댁으로 보내게 되었다.
사무실 이사는 스스로 했다. 작은 사무실이라 이사비용이 크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았다. 새로 입주하시는 분이 책장이나 소파처럼 큰 가구들을 인수해 주셔서 가능했던 거 같다. 수도자의 마음으로 수백 권의 책을 나르고 또 나르고 있을 때(책이 엄청나게 무겁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문득 전에 다니던 회사 생각이 났다.
입사 3년 차의 일이었던 것 같다. 가파른 성장세를 너무 믿었던 것일까? 회사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며 생산시설 밖에 크고 화려한 건물을 신축하였다. 건물의 맨 위층에는 사장실이 이전하였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사장실이 있는 층에는 경주에 있는 포석정을 모티브로 한 연회장이 있다더라'하는 식의 유언비어가 사내에 퍼질 정도였다.(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토록 한심해 보이던 일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규모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지만.
이젠 2평 남짓한 내 방이 나의 사무실이다.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다. 화려한 책장도 없다. 안마의자도 없다. 거래처와의 미팅은 카페에서 한다. 하지만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17개월 간의 사무실 생활은 성공한 사람을 코스프레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내 돈을 내고 내 사무실에 있었는데도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사무실을 정리한 후 밀린 숙제를 다 한 것처럼 홀가분하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냐?" 지금은 가방에 한눈팔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