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아이템을 정하다.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by 날큐

4월의 도쿄는 아름다웠다. 신카이 마코토의 열혈 팬인 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벚꽃잎이 정말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질까?' 하는 호기심도 잠시. 10평이나 될까 하는 아담하지만 예쁜 숙소 건너편, 메구로 강을 따라 나있는 벚꽃 길을 걷기 시작하자,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게 놔둘 수밖에 없었다. 마치 30대 중후반의 우리가 다카키와 아카리가 된 듯했다. 해가 진 후의 나카메구로는 더욱 좋았다. 아직은 찹찹한 4월의 저녁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는데 반해, 떨어지는 수많은 벚꽃잎들이 조명에서 나오는 불빛을 튕겨내며 강 주변은 마치 타오르는 것 같았다. 벚꽃 길에서 느꼈던 촉각과 시각 사이의 괴리감은 내가 처한 현실의 모순적인 상황과 닮아 있었다. 당시 내 마음속에는 취소될 수도 있었던 휴가를 왔다는 안도감과 구체적인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둔 불안감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창업아이템은 한의원이었다. 아내에게는 숭고하고 인본적인 비전이 있었고 나에게는 현실적이고 재무적인 비전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 어쩌면 '다름'이 창업 파트너로 서로를 선택하게 된 가장 강력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 뛰어난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보았던 탓인지, 각자가 국내 최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능력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린 완벽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두 살 때 가지고 놀던 두 조각 퍼즐처럼 서로의 다른 점들이 정확하게 드러 맞는다.



이런 식이다. 아내가 식당에서 예쁜 코스터를 살피고 있을 때, 나는 테이블 수를 세어 하루에 가능한 최대 매출액을 계산한다. 아내가 단체 회식 자리에 억지로 참석한 듯한 옆 테이블 여자분을 안쓰럽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회식이 잦았던 회사가 그리워진다. 아내가 바다를 보며 '물멍'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오늘 여행 계획을 점검한다.



당시 나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율성과 생산성에 심취해 있었다. 먼 곳에 볼 일이 있으면 그 근방의 친구와 저녁 약속을 잡고, 산책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듣고, 아내와 세부 여행을 갔었을 때는 며칠 먼저 출국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지금은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문득 버릇이 나올 때가 있다.) 아무튼 그땐 그랬다. 이런 나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찾아라.", "좋아하는 분야에서 창업하라."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착하게 살아라'와 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어설픈 논리가 펼쳐진다. 당시 골프 백돌이였던 나는(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새로 출시된 드라이버를 시타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설프게 스윙을 하고 있는데 점원은 웃참을 시전 하며 옆에 서있고, 그 옆에는 시타를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연습 때는 헤드에 공은 맞췄는데 부담감에 헛스윙까지 하고 만다. 페인 포인트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골프다. 일석이조다. 완벽한 아이템이다. 여러 종류의 드라이버를 시타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면 될 것 같다. 초보들도 느긋하게 드라이버를 쳐 볼 수 있다. 불편함이 해결된다. 나중에는 시타한 드라이버를 그 자리에서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점이 늘어나면서 구매 파워가 생긴다면 할인도 가능하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직 드라이버'라는 상호(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일을 벌여 보려는데,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오빠, 나랑 한의원 같이 해보지 않을래?" 뜻 밖이었다. "내가 거기서 뭘 하는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모든 여자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 여자가 일상에서 겪는 작아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치료하고 싶어. 그러려면 오빠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 "..."



이 지점에서 나의 어설픈 논리는 또다시 펼쳐진다. 모든 여자가 행복하려면 한의원 하나로는 안된다. 어떤 형태로든 확장이 필요할 것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내 구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한의원을 개원하려면 한의사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럼 한의사들과 내 영역(그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영역도 아니다.)에서 경쟁하면 되는 거 아닌가? "물 반, 고기 반"이다.(그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역시도 아니었다. 한의사들이 그렇게 전략적일 줄이야.) 게다가 페르소나는 아내 자신이었다. 생리전증후군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대학 시절부터 쭉 지켜보아왔던 터라 잘 알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한의사가 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완벽하다. 아,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아내는 한의대에 가기 전 패션에디터였다. 스토리텔링이 된다. 글로 알릴 수 있다. 업체에서 관리하는 내용 없는 블로그에 비하면 경쟁력이 있다. 천성이 경주마인지라,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일은 서둘러 진행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업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