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과 돈의 사이 어딘가에서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by 날큐

나는 돈과 상관없이 선한 의도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업에 있어서 혈액의 역할을 하는 돈이 어떻게 상관없단 말인가? 하지만 어김없이 성공한 창업가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하고 있다. 대니얼 카너먼의 말이 맞았나 보다. '기억하는 자아'는 실제로 살아가는 '경험하는 자아'와 다르다. 대부분의 시간을 돈과 관련된 고민을 했지만 선한 의도를 생각한 순간이 인상적이었다면 사람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너무 부정적인 건 아닐까 하는 자조 섞인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내 속이 검으니 다른 사람도 검게 보이나 의심된다. 자존감이 낮아진다. 반듯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데 말이다.



얼마 전 정답을 찾은 듯하다. 아니, 한 창업가의 인터뷰에서 답으로 가는 힌트를 얻었다. "돈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맞다. 사업과 돈은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조직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 목표는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미션, 비전, 핵심가치, 목표는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의미이지만, 작은 조직에서는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 한의원에서는 아직까지는 미션이라는 용어로 포괄해서 쓰고 있다.)







환자들은 우리 한의원의 이름을 좋아한다.(홍보성 글이 아니므로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겠다.) 운영팀에 한의원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를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매뉴얼로 작성해줬을 정도이다. 한의원 이름은 아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제목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 여자라는 색채가 너무 강해 처음에는 다른 이름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름을 밀어붙였다. 우리의 미션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서이다.



우리는 한의원이라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여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라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다. 한의원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미션을 달성할 수 있는 첫 번째 아이템일 뿐이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미션 속 '요즘 여자들'의 정의는 나이와는 상관없다. '나를 사랑하고 내 삶에 충실한 요즘 시대의 모든 여자'를 지칭한다. 현실에서 그녀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가정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양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노산은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으며 환경호르몬에 노출되어 있어 관련 질환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과 장벽과 맞서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아내와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하루는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왜 한 달에 반은 아파?" 책에서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아내가 많이 섭섭했었나 보다. 남자 형제만 있는 나는 당시 월경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봤던 거 같다. 순수함을 가장한 멍청함이었다. 우리 한의원은 사소하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통증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미션은 더 높은 곳에 있다. 여자들이 자기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남자들도 자신의 아내, 엄마, 딸의 몸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영복 입은 여자들 몸에만 주의를 기울일 일이 아니다. 고루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이 편안해야 남자도 편하다. 결혼한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원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의사결정은 우리의 사명을 기준으로 하려고 한다. 물론 돈에 대한 목표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재무적으로 합리적이라도 미션에 반하는 의사결정은 피하려고 한다. 우리 한의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우리의 미션을 지겹게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직원들도 미션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지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녀들도 요즘 여자들이 아닌가. 돈에 대한 목표로 직원들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으니, 열심히 하자"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공감할 수 있는 미션으로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기업문화이고 조직의 진정성일 것이다.







사업가들은 오늘도 미션과 돈 사이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있다. 선한 의도와 생존 모두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사명을 기준으로 한 일조차 의심이 된다. 돈을 위한 결정을 해놓고 미션을 위해 했다고 짜 맞추기식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젠 성공한 사업가들이 입 모아 선한 의도를 강조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돈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놓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다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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