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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Nov 12. 2024

적도 친구로, 에이브러햄 링컨

1809년 2월 12일, 영국의 한 저택에서 장차 과학계의 거인이 될 아이가 세상밖으로 나왔을 때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을 인물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매력적이었다. 같은 날 태어난 친구의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못생긴 외모에도 그에게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원칙 아래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 다윈보다 이십여 년 앞선 - 향년 56세에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가 한 연설에서 말했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복하지 못했다. 넉넉지 못한 환경에 더해 아홉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믿고 의지하던 누나마저 10년 뒤에 어머니를 따라갔다. 아버지는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심지어 아들이 책을 읽는 것도 싫어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비범함을 알아본 새어머니가 교육을 시켜보려 애를 쓰지만 한계가 있었다. 링컨이 받은 정규교육은 모두 합쳐봐야 일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독서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링컨은 특히 문학과 역사를 좋아했는데 이는 훗날 그가 했던 매력적인 연설의 기반이 된다.  



          상원 선거에서 떨어지고 시골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던 링컨에게 운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정치판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더글라스와의 토론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링컨은 순식간에 노예제를 반대하는 대표주자로 떠오른다. 기세를 탄 그는 대통령 후보 공천에 도전한다. 경쟁자들은 쟁쟁했다. 세 명 모두 링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화려한 경력에 더 나은 교육을 받았고 인지도도 높았다. 누가 봐도 링컨이 당선될 확률은 적어 보였다. 그는 영리한 전략으로 선거에 임한다. 두 번째가 되기로 한 것이다. 선두로 치고 나가려고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차선이 되어 제일 앞선 후보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이었다. 링컨의 접근은 옳았다. 실제로 가장 앞서 있던 슈어드가 '도덕이 헌법보다 앞선다'는 무리한 발언으로 표를 잃으며 링컨은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링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대당이 분열한 틈을 타 단숨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다. 비록 역대 최저 지지율을 얻은 대통령이었지만 말이다.



          대통령이 된 링컨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얼마 전까지 자신과 후보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한다. 탄탄한 정치경력의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권모술수에 능한 야심가 체이스를 재무장관 자리에, 오만하고 다루기 어려운 베이츠를 법무장관이라는 요직에 앉힌다. 이에 더해 수년 전 큰 소송건을 빼앗고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던 스탠턴을 전쟁장관에 기용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었다. 라이벌들, 그것도 자기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링컨이 옳았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었던 슈어드는 뛰어난 정치적 식견으로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도왔고 더 나아가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대통령에 대한 야망을 끊임없이 드러냈던 체이스도 재무장관으로서의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국채발행으로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을 넉넉히 확보했다. 베이츠도 체이스와 균형을 이루며 법무장관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스탠턴은 과감한 결정으로 북부가 전쟁에서 승기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링컨의 이상한 내각은 성공적이었다.   



          적을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내가 적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다음에는 적이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링컨은 두 방면에 모두 뛰어났다. 링컨은 그릇이 컸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을 반영하지 않았다. 사람을 쓸 때의 기준은 단 하나였다. 자리에 적합한 능력을 가졌는가였다. 맡긴 일을 잘 해낼 수만 있다면 과거 자신에게 어떻게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인 자신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눈감아 주었다. 사소한 모욕도 평생 기억하고 복수했던 마이클 조던에게는 부족했던 관대함이 링컨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라이벌들이 진심으로 링컨을 받아들인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링컨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이다. 그는 가식 없는 성격에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항상 주변을 친근하게 대했으며 유머감각도 있었다. 때문에 감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편안함을 느꼈다. 링컨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링컨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의 체면을 지켜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리에서 쫓겨나면서도 링컨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능력이 부족해서이건 비리를 저질러서이건 상황에 떠밀려서이건 링컨과의 마지막은 그리 초라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쟁에서 패배하고 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이런 점이 링컨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리더로서의 능력도 한몫했다. 링컨의 강점은 겉으로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지도자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때문에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라이벌들은 점차 그의 진면모를 깨닫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링컨은 사람을 잘 썼다. 그에게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상대의 강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이에 부합하는 자리를 제안했다. 실제로 슈어드의 뛰어난 판단력과 낙천적인 성격은 국무장관에 어울렸고 급하지만 추진력이 강했던 스탠턴의 성향은 전시상황에 적합했다. 체이스의 비상한 두뇌와 베이츠의 엄격한 성격도 각자의 위치에 잘 맞았다. 정치감각도 탁월했다. 체이스를 견제하기 위해 베이츠를 기용하며 힘의 균형을 맞춘 것은 권력 구조에 대한 링컨의 이해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링컨의 말과 글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이는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이처럼 링컨은 인간적인 매력에 지도자로서의 능력까지 있었다. 때문에 반대편에 서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링컨이 손을 내밀면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더십의 모습은 다양하다. 스티브 잡스처럼 열정적인 에너지로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도 있고, 일론 머스크처럼 망상에 가까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며 믿음을 줄 수도 있다. 마이클 조던처럼 압도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팀원들을 움직일 수도, 벤저민 프랭클린처럼 푸근한 매력으로 주변을 포용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지도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링컨이 탁월한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쟁자를 넘어 자신을 비난하고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를 위해 일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적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리더에게는 가장 높은 수준의 무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이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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