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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Oct 05. 2024

하게 하는 자,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 모든 사람은 영웅 아니면 얼간이였으며 모든 것들은 최고 아니면 쓰레기였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직선적인 성격까지 더해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였다. 말도 잘 바꿨다. 심지어 '쓰레기'라고 말한 아이디어를 몇 주뒤에 본인이 생각한 것처럼 다시 들고 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술수에 능했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훔쳐왔다. 아무리 피카소가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다지만 베낀 디자인을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말하는 잡스를 보면 뻔뻔함마저 느껴진다. 게다가 젊은 시절에는 냄새도 심했다. '채식을 하면 안 씻어도 된다'는 족보도 없는 신념에 따라 몇 주에 한 번, 심지어 물로만 씻었기 때문이다. 한 투자자는 더러운 그의 몰골을 보고 애플 초기에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 인생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특정 분야에서 특출 났던 것도 아니다. 잡스 하면 첨단기술이 떠오르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그는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거의 없었다. 기술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 잡스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그마저도 한 학기만 하고 그만두었다. 그의 엔지니어링은 아버지 차고에서 안 쓰는 부품을 모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었던 것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아타리'라는 게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지만 - 그것도 경기가 호황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 고작 1년도 못돼 그만두었다. 마케터로서 일해본 적도 없고 경영 분야의 직함은 사장 말고는 달아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위대한 제너럴리스트는 컴퓨터를 디지털 허브로 만들며 죽어가는 시장을 부활시켰고 에어팟으로 음반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리고 아이폰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잡스에게는 압도적인 능력이 하나 있었다. 바로 다른 사람을 하게 하는 능력이었다. 사실 그는 엔지니어도,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관리자도 아니었다. 대신 그의 곁에는 천재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이 있었고 뛰어난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있었으며 참신한 마케터 리 클라우가 있었다. 그리고 팀 쿡과 같은 유능한 관리자도 있었다. 그들은 스티브 잡스를 위해 일했다. 스스로 잡스의 현실왜곡장에 들어가 그의 무리한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었다. 감정기복이 심한 그의 폭언을 견뎌내면서 말이다. 이것이 스티브 잡스의 마력과도 같은 힘이다.



          그렇다면 잡스는 어떻게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어쩌면 특정 분야에서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일하게 할 수 있었을까?



          사실 잡스와 함께 일한 사람들도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돈을 벌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간단히 말해 잡스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잡스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알아보는데 능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잡스는 매력적이었다. 신기하게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인권위에 고발할 정도의 인간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었다. 픽사의 래시터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거대한 기업인 디즈니의 끈질긴 구애를 받고도 잡스를 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잡스는 그들에게 명확한 목표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었다. 잡스의 확고한 신념은 그들에게는 커다란 비전이었다. 보통의 회사라면 사장될 급진적인 아이디어들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물론 쓰레기- 잡스의 표현이다 -가 아니라면 말이다. 잡스는 의사결정도 빨랐다 - 번복하는 일도 많았다 -. 수개월이 걸릴 의사결정을 단 몇 분 만에 해버렸다. 게다가 잡스의 고약한 성격은 -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 결이 다른 사람, 즉 - 잡스의 표현으로는 - 얼간이들을 마치 거름망으로 이물질을 솎아내듯 걸러냈다. 때문에 잡스의 주변에는 일에 미쳐 사는 뛰어난 인재들만 남게 되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상사의 거지 같은 성격보다 중요한 사람들만 남게 된 것이다. 이는 그들이 잡스와 함께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어 주었다. 본래 뛰어난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잡스에게는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다. 얼핏 보면 구분할 수도 없는 색상의 차이로 제품의 출시를 미루는 잡스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짜증 나는 일이었겠지만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암이 재발했을 때였다. 위급한 상황에도 잡스는 마스크를 안 쓰겠다고 버텼다.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이유는 단순했다. 마스크의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결국 강제로 마스크를 쓰고 급박한 상황에서 벗어난 잡스는 의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너무 복잡하고 볼품없는 산소 모니터를 좀 더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방법이었다. 잡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미친 짓이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멋지게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잡스에 대한 호감은 그의 열정적인 에너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튠즈에 들어갈 음악 저작권 확보를 위해 음악가들과 협상할 때의 일이었다. 잡스는 트럼펫 연주자 윈턴 마살리스를 만났다. 그리고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없던 그에게 두 시간 동안이나 아이튠즈 스토어에 대해 설명했다. 마살리스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지요. 잠시 후 저는 컴퓨터가 아닌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열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지요."



          잡스에게는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세일즈맨 기질도 있었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유명하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쇼를 보는 듯한 그의 발표는 세간의 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리바이스 501 청바지와 이세이 미야케가 만들어준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그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쇼맨이었다. 하지만 그가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만 유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도 뛰어났다. 잡스의 타깃이 된 사람들은 결국 그의 현실왜곡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잡스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그리고 연주자들은 그와 함께할 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잡스의 뛰어난 면은 많다. 천부적인 미적 감각, 완벽주의, 선택과 집중, -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맹렬함이라고 표현한 - 거친 열정, 기술과 인문을 통합할 수 있는 감각, 큰 그림을 보면서도 세부사항에 집중하는 비범함, 심지어 잘 베끼는 능력까지. 어찌 보면 그의 혁신은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능력들은 주위에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기에 발휘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그가 짠 판에 들어오게 한 것은 잡스 그 자신이었다. 나는 이것이 그가 가진 진짜 무기라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죽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가장 좋아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에도, 비운의 삶을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도, 천재의 대명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눈을 감았을 때도 느낄 수 없었던 묘한 기분이었다. 나도 내가 왜 울먹했는지 모르겠다. 잡스를 잃은 안타까움에서인지,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뛰어난 작가의 필력 탓인지, 잡스에게서 나의 어떤 면을 발견해서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그의 현실왜곡장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잡스의 매력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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