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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Oct 07. 2024

못 말리는 승부욕, 마이클 조던

내가 어릴 적, 거의 모든 남학생들은 농구를 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혀를 길게 내밀고 슛을 하였다. 한 사람 때문이었다. 마이클 조던. 그는 우리의 우상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미국 농구계의 고트 - GOAT, 스포츠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단 한 명의 선수 -였으며, 결국 NBA - 미국프로농구 -보다 유명한 선수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나이키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조던이 농구 역사에 남긴 기록은 화려하다. 그는 6개의 우승 반지가 있으며 6번의 파이널 MVP를 수상하였다. 득점왕에 10번 오르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목록의 상단에 그의 이름이 있다. 사실상 NBA 기록 대부분에 조던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조던의 위대함은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NBA에는 조던보다 더 많은 득점을 한 선수도, 더 오랜 기간 뛰며 더욱 많은 연봉을 받은 선수도 있었다. 심지어 우승 반지를 5개나 더 가지고 있는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배자가 되지 못했다. NBA를 - 미국을 넘어 - 세계인의 스포츠로 만들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갖지 못했고 은퇴 후에도 로열티로 연간 수천억 원의 돈이 통장으로 입금되는 광경을 목격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조던은 어떻게 특별한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타고난 재능에 의해서였을까? 그렇게 뭉뚱그려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조던 못지않은 신체적인 능력을 가진 선수들은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던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를 뛰어난 농구선수를 넘어 모든 스포츠를 아우르는 위대한 운동선수로 만든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조던만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인생에는 드라마가 있었다.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장밋빛만 가득한 것 같은 슈퍼스타의 삶은 크고 작은 시련들로 가득했다. 그때마다 조던은 어려움을 보란 듯이 극복했다. 어쩌면 그는 시련을 도전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시련이 도전이 되는 순간 눈앞의 어려움은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겨야 했다. 조던에게 패배는 곧 모욕이었고 그에게 굴욕을 안겨준 것에 대해 몇 배로 갚아야 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조던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 키가 작다는 이유로 1군 선발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다. 그는 보란 듯이 전미 최고의 유망주로 우뚝 서며 - 갑자기 키가 큰 영향도 있었다 - 몇 년 전 굴욕을 씻었다. 대학시절에는 만년 2등인 소속팀을 버저 비터농구에서 경기 종료를 알리는 경보기 즉 버저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선수가 날린 슛 - 한 방으로 정상에 등극시키기도 했다. 프로에서도 조던의 복수는 이어진다. 약체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그는 당시 거친 플레이와 조직적인 수비로 리그를 지배하고 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플레이오프-정식 시즌이 끝난 뒤 리그 승자를 가리기 위하여 치르는 경기-에서 1승 4패로 패배하지만 이후 2승 3패, 3승 4패로 매년 1승씩을 더한 끝에 결국 4승 무패로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다. 또한 1987년 덩크 콘테스트 2위에 머무르자 그다음 해에 하늘을 나는 듯한 덩크슛을 선보이며 우승한다. 이때 얻은 '에어 조던'이라는 별명은 나이키와 조던에게 더욱더 큰 부를 안겨주게 된다. 



          그 밖에도 극적인 장면을 수없이 연출한 조던이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다. 조던의 기량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아버지가 피살된다. 금품을 노린 강도들의 소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마이클 조던의 열혈한 팬이었다. 범행의 목적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신발을 사기 위한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조던은 은퇴한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야구선수로 전향한다. 하지만 야구선수로는 시원치 않은 행보를 보인 조던은 야구계가 파업을 하자 2년이 채 못돼서 농구선수로 돌아온다. 복귀 첫해 조던은 여전히 훌륭한 선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조기 탈락하게 된다. 비난은 슈퍼스타의 몫이었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조던은 조던이었다. 이듬해 바로 팀에게 우승 프로피를 안겼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조던은 복수에 성공한 셈이다.

         


          조던의 승부욕은 어느 정도 타고난 것으로 봐야 한다. 그의 증조부인 도슨 조던은 어린 시절 마이클 조던의 영웅이었다. 작은 키만 제외하자면 그의 증손자와 판박이기도 했다. 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를 극복하고 조던 일가를 일으켜 세웠다.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시대에 대가족을 먹여 살린 강인한 정신력도 가지고 있었다. 조던의 지칠 줄 모르는 투쟁심은 그의 증조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한 살 터울의 형도 영향을 미쳤다. 어릴 적 형과의 경쟁 관계는 조던의 타고난 승부욕에 불을 짚였다. 형을 편애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아니 형과의 경쟁 자체에서 이기기 위해 조던은 항상 투쟁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조던은 영리했다. 타고난 승부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강한 압박을 가할 때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항상 극한 상황으로 밀어붙였다. 물론 주변 사람들도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소심한 성격도 한몫했다. 조던은 자신에게 모욕- 어디까지나 조던의 기준에서의 모욕이다 -을 준 것들- 사람, 상황 등 -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반드시 되갚아 주었다. 유치해 보이는 복수심은 인격적으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경기에서는 드라마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극적인 서사의 주인공은 항상 조던이었다. 사람들은 시련을 멋지게 극복해 내는 장면에서 희열을 느꼈다. 조던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거침없는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괴롭히기까지 했다. 조던의 팀원은 대개 그와 일대일 대결을 해야 했다. 풋내기 시절에도 팀의 스타플레이어에게 맨투맨을 신청했을 정도였다. 운 좋게 조던을 이긴 사람은 그가 이길 때까지 대결을 계속해야 했다. 지기라도 한 사람은 모욕적인 언사를 참아 내야 했다. 도박도 빼놓을 수가 없다. 경기 전날 늦은 시간까지 갬블장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조던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기도 좋아하였다. 특히 골프 내기를 많이 하였는데 판돈은 수억 원에 달했고 심지어 자신이 졌을 때는 돈을 주지 않고 더 큰 내기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트래시 토크시합 중에 상대 선수의 기를 꺾거나 정신을 흩뜨리려고 하는 잡담 -는 그에게 일상이었다. 경기가 시작되면 조던은 상대방을 비하하는 말로 그들의 멘털을 흔들어 놓았다. 고작 160cm의 키로 2미터도 큰 키가 아닌 NBA에서 활약한 선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먹시 보그스. 샬롯 호네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포인트 가드였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었다. 하루는 마이클 조던이 그를 막게 되었다. 신장차가 거의 40cm나 나는 믹스 매치였다. 하지만 팀에서 보그스를 막을 만한 스피드를 가진 선수는 조던뿐이었다. 보그스가 처음으로 공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어올 때였다. 조던이 외쳤다. "이 난쟁이 새끼야!" 이것이 바로 조던의 인간성이다.



          조던이 '명예의 전당'에서 한 연설은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스피치로 꼽힌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쯤이면 아무리 성격이 안 좋았던 사람이라도 대개 부드러워진다. 은퇴 후 나이를 먹은 데다가 스포츠 선수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상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던은 달랐다. 이 영예로운 자리에서 은인이나 다름없는 대학 시절 코치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불스의 전 단장이자 조던의 앙숙이었던 제리 크라우스는 그 연설을 보고 말했다. "전 그날 연설을 듣고 좀 놀랐어요. 하지만 말이죠. 그게 바로 마이클이에요." 

         


          마이클이 은퇴한 후 '제2의 조던'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많았다. 조던이 직접 지목했던 앤써니 하더웨이부터 이른 나이에 별세한 코비 브라이언트, 현재 수년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까지, 꽤 많은 선수들이 조던의 후계자로 불리었다.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조던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조던의 빈자리를 메울 수 없었다. 그만큼 조던은 특별한 선수였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던 그만의 승부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 전 50대에 접어든 조던이 한 대학 농구팀에 방문하는 영상을 보았다. 거기서도 조던은 일대일 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마이클 조던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를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도,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은인을 비판하는 배은망덕한 사람으로도 만든 그만의 기질이다. 아마 그 대결에서 조던은 이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길 때까지 상대선수를 놔주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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