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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속이는 자, 손정의

by 날큐

자기 계발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이렇게 해봐' 류이다. 이런 책들은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렇게 했으니 너도 한 번 해봐'라는 식이다. 정의하기조차 힘든 성공을 인과관계로 설명하기는 애당초 불가능하기에 이런 귀납적인 접근은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다음은 '가르쳐줄게' 류이다. 이 부류는 구체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특정 분야의 일을 잘하는 방법이나 주식, 부동산 등에서 수익을 내는 법, 돈을 절약하는 방법 등 소재는 다양하다. 대부분 초심자를 위한 입문용이며 저자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져서인지 제목이 자극적인 경우가 많다. 마지막은 '원하면 된다' 타입이다. 이들은 첫 번째 유형 중 특히 '마음'에 집중한 책들이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기 확신을 갖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며 간절함으로 지속해 나가다 보면 어느덧 원하는 모습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손 마사요시, 다시 말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세 번째 부류, 그중에서도 자기확신에 있어서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손정의는 규수 사가현의 한인 마을에서 제일교포 3세로 태어났다. 마을의 출발이 무허가였기에 공식적인 지번도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글 이름을 숨긴 채 '야스모토 마사요시'로 살아갔다. 조선인이 받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계는 분명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소년의 꿈을 꺾었다. 결국 그는 '야스모토'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손정의는 떠났다. 차별과 편견이 만연해 있는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갔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거기서 그는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었고, 이름을 감춘 채 무번지에서 살아가던 소년은 그렇게 거인이 될 수 있었다.


손 회장은 일본에서 두 번째 가는 부자이다- 2024년 기준, 1위는 유니클로 야나이 회장 -. 그의 재산은 40조 원에 육박하며 도전정신이 있는 기업가로 평가받고 있다. 투자자로서의 영향력도 대단한데, 그는 야후, ARM, 알리바바에 투자하며 엄청난 수익을 거뒀으며 몇 해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하며 또 한 번 그의 안목을 증명하였다. 현재 그가 - 정확하게는 소프트뱅크가 - 운영하는 비전펀드는 세계 최고 규모의 기술 투자 펀드로 자리매김하였고 현재진행형인 그의 도전에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손정의의 포부는 남달랐다. 그가 19살에 세웠다고 알려진 '인생 50년 계획'은 젊은이의 패기를 넘어 허풍쟁이의 객기에 가깝다. "20대에 사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30대에 조 단위- 이하 원화로 환산 -의 자금을 모은 후 40대에 십조 단위의 승부를 걸며, 50대에 사업을 완성한 뒤 60대에 경영권을 넘긴다" 과연 이걸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애송이는 어떻게 이런 규모의 숫자를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 대한 그의 믿음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놀라운 사실은 손정의는 이 모든 것들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60대에 은퇴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했다.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초창기 파트너였던 홍 루의 말대로 그는 '꿈을 가진 갬블러'였다. 미국에서 겨우 자리 잡은 사업을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원점에서 시작하기로 한 선택이나, 사업 초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본금의 80%를 박람회에 쏟아부은 결정, 나아가 신생업체인 야후에 1억 달러를 투자하고 이동통신업에 뛰어들기 위해 꼴찌 통신사인 보다폰(재팬)을 일본 최고가에 사들인 것은 과감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물론 모든 선택이 다 맞았던 것은 아니다. 위워크처럼 큰 손실을 본 사례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과감한 도전들이 이어지며 그의 원대한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빌 게이츠가 자신이 처음 쓴 책을 선물하며 손정의를 향한 문구를 하나 적어 넣었다고 한다. "당신은 승부사다. 나만큼이나(You are a risk taker as much as).


위대함은 쌓여가는 실패 속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단 한 번의 고난도 없이 성공하는 것은 캣닙 옆에서 우울해하는 고양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드물다. 위기가 숙명과도 같은 사업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끈기가 필요하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손정의에게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자금이 떨어져 파산 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사업이 자리를 잡으며 한창 치고 나가야 하는 시기에는 간염으로 수년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며, 닷컴 버블이 붕괴되는 시기에는 하루아침에 수십 조원의 자산이 증발해 버리는 경험도 했다. 통신사업에 진출하고는 425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국가적인 사고도 있었다. 그때마다 손정의는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버텨나갔다. 인고의 세월이 지나면 위기는 어느새 지나가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손정의는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다.


손정의에게는 유독 은인들이 많다. 시제품만 보고 학생 신분의 손정의에게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모자라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도왔던 사사키 전무를 비롯해 사업가로서의 첫 발을 함께 해 준 모더 박사, 출판업 진입을 도왔던 다나베 아키라, 소프트웨어 유통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후지와라 무쓰로와 조구 히로미쓰, 게임 시장 진입을 함께 한 구도 형제,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손정의를 도와주었다. 훗날 소프트뱅크 그룹에서 '은인 감사의 날'을 지정할 정도였다.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정의의 얼토당토않은 요구들을 들어준 것을 단지 운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는 매력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천재라고 소개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은 그의 열정과 어우러지며 상대에게 무언가 모를 특별함을 주었다. 미래를 향한 손정의의 확신은 동료들에게는 비전이었다. 그와 일하게 되면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 뻔했지만 그들은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에게 자신을 맡겼다.


손정의는 일론 머스크처럼 무모했고 미켈란젤로처럼 끈기 있게 버텼으며 스티브 잡스처럼 다른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기확신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들을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특별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토록 굳건한 자기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타고난 자신감일까?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손정의의 단단한 마음을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특별한 자기확신의 근원에는 높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고, 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손정의의 부친이다. 그의 아버지 손삼헌은 아들이 여섯 살이 될 무렵부터 가족들에게 손정의를 존칭- 정의 상 -으로 부르게 했다. 아들에게 끊임없이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격려했으며 심지어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존중과 긍정적인 말들 속에 소년 손정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삼헌은 아들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손정의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반대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들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당시 손삼헌이 병석에 누워있을 때였다.


그는 잠재의식도 활용하였다. 푸앵카레가 창의적인 발견을 위해 무의식을 활용하였다면 손정의는 잠재의식을 자신감을 높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며 목표를 향해 정진하기 위한 촉매제로 사용하였다. '비전 노트'라고 알려진 그의 메모장은 사실 자기암시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그는 긍정적인 확언들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고 수시로 읽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나 생각들을 반복적으로 주입해 잠재의식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이는 조셉 머피나 루이스 헤이 등의 대가들이 언급한 방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복적인 자기암시는 아버지의 세뇌에 가까운 격려와 어우러지며 스스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의 밑거름이 되었다.


노력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해 주었다. 소프트뱅크 미국 사장을 역임하며 손정의의 '미국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드록타는 손정의에게는 두 가지 특출 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심히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살아있는 사람의 전기물은 대개 미화되기 마련이고 특히 일본에서는 과장되고 영웅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그의 유학생활이나 사업초기에 보여준 노력들은 분명 초인적인 영역이었다. 만성간염이 괜히 온 것은 아니다.


손정의는 단순히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IT가 떠오르는 시기에 경제 호황을 맞은 일본에서 인수한 회사들의 가치가 오르며 지금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오는 위기에도 꿋꿋이 버티며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나간 것은 손정의 그 자신이다.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며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를 속였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자기를 믿는 것은 당시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 처한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희망에 가깝던 믿음은 크고 작은 성공이 이어지며 점차 단단한 확신이 되어 갔다. 그렇게 그의 꿈은 커져만 갔고 손정의는 아시아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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