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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Jan 24. 2024

학교 체육의 관점에서 보는 스포츠, 경쟁을 통한 배움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경쟁, 바람직한 경쟁 교육은 가능할까

*이 글은 조금의 편집과정을 거쳐 '민들레 제151호'에 실렸습니다.

https://www.mindle.org/35/?idx=18201266&bmode=view




스포츠의 본질인 경쟁과 도전, 그리고 존중


  우리나라의 체육 교과 교육과정은 7차 교육과정(1997.12.)까지만 해도 스포츠 종목이 단원(영역)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중학교 체육 교과는 [ 체조 / 육상 / 수영 / 개인 및 단체운동 / 무용 / 체력 운동 / 이론 / 보건 ]으로 영역이 구성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영역을 구성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스포츠는 체육 교육의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체육 교과의 영역 중 하나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개인 및 단체운동' 영역에서 1학년은 핸드볼과 축구를 2학년은 농구와 배드민턴을 3학년은 배구와 소프트볼을 학습하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즉,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같은 학년 같은 학기에 특정한 내용을 동일하게 학습했던 것이다. 따라서,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학교의 교육환경이 열악하여 그것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수업을 해야 했다.


  현재 40~50대의 학창 시절, 체조 수업을 하기 위해 고사리 손의 아이들이 뜀틀과 매트를 들어 운동장으로 이동하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뜀틀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내 스포츠 종목이 분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체육관이 있는 학교가 거의 없었기에 현장의 책무성 강한 교사와 순종적인 학생들은 그냥 그렇게 체육 수업을 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오면서 열악한 학습환경에서 무리하게 수업을 추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수업을 실제로 할 수 있는 내용, 학교마다 학습환경에 맞는 내용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져갔다. 결국, 체육교육 흐름의 맥락을 수용하여 개정한 2007개정 교육과정(2007.2.)」에서는 기존의 스포츠 종목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내용영역이 '신체활동 가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면서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전문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2007개정 교육과정은 체육 교과 교육과정의 내용영역을 [ 건강활동 / 도전활동 / 경쟁활동 / 표현활동 / 여가활동 ]으로 구성하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체육 교육과정 내용영역을 보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단어가 눈에 띈다. 바로, 경쟁이라는 신체활동 가치가 내용영역 즉 단원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2015개정 교육과정(2015.9.)의 체육 교과 교육과정에서는 '경쟁' 영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경쟁’은 개인이나 집단 간의 능력을 서로 겨루는 상황에서 상대를 배려하며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을 의미하며, 생태계에서 이루어지는 약육강식의 경쟁 개념과는 다르다. 신체활동에서 집단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경쟁 과정을 통해 협동과 공정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극복하고 건강한 미래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된다.
  '경쟁'은 신체활동에 존재하는 경쟁과 협동의 원리를 인식하고, 선의의 경쟁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게임 수행 능력과 다양한 인지 전략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둔다.


  경쟁 영역은 그 유형에 따라 영역형 경쟁, 필드형 경쟁, 네트형 경쟁으로 구분한다. 세부적인 영역 수준에서는 경쟁이라는 단어를 스포츠로 대체하여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 예를 들면, 영역형 경쟁은 공을 가지고 상대가 지키고 있는 영역을 침범하여 목표 구역으로 이동하면 득점하는 형태의 스포츠를 의미한다. 즉, 영역형 경쟁 영역은 축구, 농구, 핸드볼, 럭비, 하키 등의 스포츠를 주요 내용으로 포함하는 영역이며, 네트형 경쟁은 네트를 놓고 경쟁하는 배구,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주요 내용으로 포함한다. 건강·표현 등의 영역은 스포츠가 아닌 내용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경쟁·도전 영역은 스포츠가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그 구조는 다를지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학교 체육 교육에서 스포츠는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스포츠 문화가 인류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목할 점은 주요 스포츠를 포함하는 영역의 이름이 바로 경쟁이라는 사실이다.


  스포츠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문장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한 정의에 반드시 포함되는 단어가 바로 ‘규칙’과 ‘경쟁’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란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경쟁하는 행위, 즉 ‘경기(Game)’를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란 그 자체로는 생산성 없는 경쟁적 놀이에 불과하지만, 스포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경기에 몰입한다. 재미있는 점은 스포츠에 빠져든 사람에게 왜 그렇게 몰입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그 이유를 뚜렷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거다. 대답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리 거창하지는 않다. 대부분이 “스포츠는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팀과의 경쟁이든, 내가 설정한 나만의 기록을 향한 도전이든 그 재미의 본질은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경쟁은 여러 가지 부정행위와 개인적·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이 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쟁을 본질로 하는 스포츠 경기 또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류의 좋은 문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사회적 가치에 반해선 안 된다. 스포츠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세부적으로 규정한 것이 바로 경기의 규칙이다.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은 함께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경쟁을 넘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태도인데, 이 가치는 바로 ‘존중(Respect)’이다. 경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동료 선수와 상대편 선수들, 심판, 규칙, 경기 진행요원, 관중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스포츠 현장에 존중이 없다면 반칙과 눈속임, 폭력과 부정행위가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한 때 암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존경받던 위대한 자전거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경기력 뒤에는 금지된 약물을 몰래 복용하는 추악한 모습이 숨겨져 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에게 자신과 함께 경쟁하는 선수들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그가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반면에, 비록 스포츠 선수로서 이룬 것은 많지 않더라도 스포츠 맨십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선수들도 많다. 학교에서의 스포츠 교육이 위대한 선수가 되는 것보다는 존중을 실천하는 태도, 즉 스포츠맨십을 배우고 실천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포츠, 실패와 협력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


  스포츠는 놀이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스포츠를 통해서 좋은 가치들을 학습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스포츠는 세부 종목별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인 규범들을 규칙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가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작게는 경고를 받는 등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부터 크게는 해당 경기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는 조치까지 당하게 된다. 선수는 이러한 단순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또는 팀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규범들을 지켜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스포츠가 교육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실패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에는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따른다. 스포츠는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다루는 방법을 학습하는 좋은 기회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만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비록 패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패자는 어떤 식으로든 승자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승자 역시 패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없다면 비난을 받게 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교육 현장, 특히 학교에서는 팀을 이루어서 경쟁하는 단체 스포츠 경기를 통한 교육에 관심이 많다. 단체 경기에서는 내가 경기를 아무리 잘해도, 우리 팀이 못 하면 이길 수 없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팀 동료들과 함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경기 중 자신의 실수로 팀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을 자책하는 동료를 격려해야 하며, 팀원의 실력이 형편없다며 비아냥대는 동료도 마음을 모아 협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내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야 하며, 동료들과 협력하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까지 메워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팀이 승리했을 때보다는 오히려 패배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스포츠의 가장 큰 교육적 가치다. 물론 오늘은 단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는 정신 승리로 패배를 가볍게 넘길 수도 있지만, 팀이 패배했을 때 어떤 감정을 공유하며 어떤 분위기에 놓이게 되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서로 격려하며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잘 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스포츠 현장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활동으로서의 스포츠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아무런 사회적·경제적 타격 없이 안전하게 학습할 수 있는 장이다.


  지난 2019년부터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 우승팀이 참가하여 경쟁하는 전국단위의 학교스포츠클럽대회를 '전국학교스포츠클럽축전'으로 개편하며, 순위와 시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도단위 대회까지 개최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런 결정의 이유는 학교스포츠클럽대회가 확산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학생의 자율적인 스포츠 참여와 즐거운 스포츠 문화를 위한 학교스포츠클럽대회가 학생선수들이 참여하는 대회나 프로 선수들의 경기처럼 승패에 집착하고 스포츠맨십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일부 사건들의 경우에는 교사와 학생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기도 하였다.


  현장의 교사들은 교육부나 일부 지역교육청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스포츠에서 경쟁을 없애버리면 그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은 각 시도교육청 대회에서 우승을 한 팀이 전국학교스포츠클럽축전에 참가하는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는 사례들도 나타났다.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경쟁이 없는 스포츠 경기 대회는 참가의 동기를 주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현장의 교사들이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바로 '패배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데, 그 기회가 없어져 아쉽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교육부는 전국학교스포츠클럽축전의 순위와 시상을 다시 부활시켰고, 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되며 많은 학생들에게 소중한 배움의 장이 되었다.




공정하게 경쟁하고 정직하게 도전하는 스포츠의 세계


  스포츠 문화 중 ‘자비규칙(Mercy Rules)’, 또는 ‘존중규칙(Respect Rules)’이라는 개념이 있다. 스포츠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뒤지고 있는 팀을 존중하며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명문화하거나 불문율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비규칙은 패배하는 팀을 배려하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패배하는 팀의 패배를 더욱 강조하는 낙인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이 있다. 또한, 자비규칙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승리하는 팀의 선수들이 개인적인 목표(예: 득점 기록 등)를 달성할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현실적인 문제 등도 있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논리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자비규칙을 찬성하는 측의 주장은 '승리를 이미 확보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이기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계속 점수 차이를 벌리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는 팀이나 선수는 자존감을 상실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어 이후의 스포츠 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어떤 학생 농구 대회는 점수 차이가 20점 이상 벌어지면 지역방어와 풀코트 프레스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으며, 또 다른 대회에서는 전반전에 점수 차이가 40점 이상 벌어지면 후반전에는 파울 등의 상황이 발생해도 경기 시간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야구 경기에서 10점 이상의 차이가 났을 때, 경기 종료는 선언하는 ‘콜드 게임(Called Game)’도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자비규칙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압도적인 승리가 확실한 팀이 경기의 나머지 시간 동안 상대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경기를 대충 하는 행위'는 오히려 패자의 수치심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농구 경기에서 더 이상 승패에 영향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경기 잔여 시간을 ‘가비지타임(Gabage Time)’이라고 하는데, 가비지타임이 되면 이기는 팀이나 지는 팀 모두 후보선수들을 출전시키거나 경기를 대충하는 식으로 일관하여 관중들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자비규칙은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적용을 공식화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자비규칙의 적용 범위에서도, 탁월함과 경쟁을 본질로 하며 기록과 상업성이 연계되어 있는 '프로' 스포츠와 학생선수가 참가하는 아마추어 경기는 다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스포츠를 다룰 때는 바람직한 가치들, 즉 스포츠맨십과 같은 규범의 실천을 끊임없이 강조하게 된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상대 선수가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경쟁을 바라보는 태도가 양극단에 있는 느낌이 강하다. 경쟁을 통해 이룩한 성과를 강조하며 무한경쟁이 만능열쇠라고 주장하는 측과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경쟁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이 타협점 없이 충돌하고 있다.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학업성적을 상대평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채택되기도 했다가, 망국적인 무한경쟁을 없애기 위해 누가 더 우수한가를 판단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가 되기도 하는 식의 핑퐁이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제한된 것을 추구하는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경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는 다시 교육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경쟁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습득하게 함으로써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스포츠는 가장 좋은 문화적 콘텐츠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는 2021년부터 ‘생활 속 스포츠 가치 실천’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무한경쟁의 세계라는 전문체육, 즉 운동선수의 길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부터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청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학생선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부조리한 경우 그 환경을 손보는 데 초점을 맞추어왔지만, 앞으로는 학생선수들을 통해 밑에서부터 위로 변화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서울에서는 지난 2022년부터 서울의 학생선수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서울학생선수위원회'를 구성하여 학생들이 종목과 학교의 경계를 넘어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3년에는 학생선수들의 목소리를 담아 '서울 학생선수 헌장'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공정한 경쟁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학교에서는 이를 반드시 가르쳐야 하며, 이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포츠다.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서 배운 좋은 가치를 스포츠 밖의 삶 속에서 실천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하여 정규 체육 교과 수업에서 제대로 된 스포츠 경기 경험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체육 교과 수업의 경계를 넘어 학교라는 경계를 넘어서도 자유롭게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미 법령이나 제도들은 만들어지고 있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학교와 학생들이 당면한 과제들이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과 학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통한 스포츠 경험이 그 기회의 측면에서 양과 질 모두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포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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