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선수들의 목소리, 서울학생선수위원회 이야기
참가하는 선수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스포츠 경기 대회
이십 몇 년 전. 대학 동아리 농구 세계는 대학교마다 경쟁적으로 개최했던 '**대학교총장배 동아리 농구대회'가 중심이었다. 각 대회는 암묵적으로 서로 겹치지 않도록 시기가 구분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참가하고 싶은 동아리들이 참가신청을 하면 대회 시작 전 '주장단 회의'를 소집하여 대회 운영 전반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과 의견 수렴, 주요 사항 협의 및 결정 등을 통하여 대회가 잘 운영되도록 준비를 했었다. 동아리 수준의 생활체육 문화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른바 '등록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 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전문적인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 역시 대회 시작 전 대진표 추첨에 주장들이 직접 참가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참가할 대회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은 바로 경기에 참가하는 우리들이었기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고 더 좋은 대회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대학생들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대회를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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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나이에 있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집단인 '대학생'들이 주체인 대회였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더 앞으로 되돌려 생각해보니, 지성과 역량을 갖춘 대학생들만이 가능한 문화라고 한계를 규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각 반에서 공 좀 찬다한다는 친구들과 모여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경기 일정을 짜고 학급대항 축구 경기 풀리그를 만들어서 어느 반이 제일 잘 하는지 어떤 친구가 잘 하는지 기록까지 해가며 신나게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 농구 좀 한다는 친구들과 모여서, 다른 동네 농구장으로 원정을 떠나고, 또 거기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유니폼을 맞춰입고 대회에 참가하는 등 우리가 하고 싶으면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도모했었다. 오히려, 시대가 변하여 사회의 모든 분야가 체계를 갖추며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다른 것 신경쓰지 말고 **만 집중해서 하면 된다.'고 제한하며 그들의 역량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 동안, 학교운동부와 학생선수 업무를 담당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 사고들을 마주하면서 도대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학생들이 나쁜 어른들, 욕심 많은 부모, 집단적이고 이기적인 사고구조 등의 부조리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기에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만 인식하고 그들의 주변을 통제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부모가 되고 난 이후에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어린 자녀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이른바 '뼈를 때리는 말'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부모가 욕심을 내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려는 순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존재는 자녀들인 것처럼, 스포츠 현장에서 어른들이 편법과 무리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이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도 선수들이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우리 학생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주장단 회의, 학생선수회의, 학생선수위원회
이러한 생각은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모든 교사들이 매순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교육활동의 맥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교사였고 교육청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서울시교육청 학교운동부 담당 장학사 선배님들 역시 같은 고민을 먼저 하셨기에 2020년에 수립했던 '학교운동부 미래 혁신 방안'에 ‘학교운동부 주장단 회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포함시켰었다.
각종 현안 처리에 급급했던 2021년, 내가 근무하고 있던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서라도 학생선수들의 대표를 모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사실, 일개 교육지원청에서 학교운동부별 대표 학생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크다. 학교운동부마다 대회일정과 훈련일정 및 장소 등이 모두 다르기도 하고, 종목마다 시즌이 다르기에 오프라인 상에서 모든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일정을 잡는 것부터가 어렵다. 더욱이 2021년은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상에서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사실, 일개 교육지원청에서 이런 일을 하기에는 학생선수 수도 부족하고 학교운동부 수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의 경우에는 서울체육중학교와 서울체육고등학교를 품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이 있어 교육지원청 단위로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2021년 말 경에는 코로나로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제한하고 있었기에 아쉬운대로 온라인 회의를 통해서 제한적이나마 시작을 하였다. 한 두 차례 온라인 회의로 짧은 시간 만남에 불과했지만, ‘학생선수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 해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더욱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보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2022년에는 체육특기학교 승인 신청 시점부터 학교별 운동부 대표 학생의 명단을 수합하여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연초에 발표한 서울형 학교운동부 운영 기본계획부터 서울 전체의 학생선수위원회를 운영을이 명시되어, 교육지원청 단위의 학생선수위원회 운영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상반기 회의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투표로 회장단을 선발하고 교육장님과의 간담회를 통하여 의견을 수렴하였다. 하반기 회의에서는 프로 선수 출신의 현직 체육 교사 두 분을 모시고 학생선수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모임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며 다양한 소통을 하며 즐거워했다. 아마도, 학생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촌에 있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다른 종목의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꼰대적 시각에서는 실제로 무엇인가 남은 활동의 직접적인 결과물들이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서울학생선수위원회도 본격적으로 내실있게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상반기에는 학생교육원과 협조하여 1박2일의 리더십 캠프를 통해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하반기에는 교육감 간담회를 통해 학생선수들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제1대 서울학생선수위원회'는 학생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수립이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었지만, 학생선수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어떤 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다음 학생선수위원회의 숙제로 남겨주었다.
학생선수헌장, 서울 학생선수들의 스포츠 가치 실천 선언
2023년 3월부터 본청 체육건강문화예술과로 인사발령을 받게 되었다. 소년체육대회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맡게되어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 업무분장표 상에 있는 '서울학생선수위원회 기획 및 운영'이라는 글씨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학생선수 대표들이 했던 이야기를 엮으면, 무엇인가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첫 걸음은 그동안 서울의 학교운동부 관련하여 발표되었던 내용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참 많은 좋은 방안들이 기획되고 문서화되며 공정하고 투명한 학교운동부 운영을 위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굳이 아쉬운 점을 찾아보니 학생선수들이 주인공인 내용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학생선수들은 그동안 선수단 결단식 등의 행사에서 우리가 정해 준 선언문을 낭독하는 수동적인 역할 정도만 했었다.
그래서 학생선수들이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로 좋은 스포츠 가치를 실천하겠다는 선언문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곧바로 서울학생선수위원회 멘토 교사들과 함께그동안 학생들이 이야기했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 학생선수 헌장 초안을 작성하였다. 2023년 7월 14일, 2023학년도 서울학생선수위원회 상반기 정례회에 모인 학생선수위원들은 이 내용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문구를 확정하고 서명하는 방식으로 '서울 학생선수 헌장'을 제정하였다. 서울의 학생선수들이 스포츠의 좋은 가치들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정해진 것이다. 그 내용은 곧바로 서울의 모든 학교에 공문으로 안내되었으며, 서울학생선수위원회 SNS를 통해서도 공유되었다. 서울 학생선수 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학생선수위원회 2년차에 접어들면서, 학생들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상반기 정례회의 첫 순서로 학생선수들이 직접 위원장(고등학생 1명), 부위원장(고등학생 1명, 중학생 1명)을 선출하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입후보하였다. 모두 자신이 임원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너무나도 잘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매번 결선투표까지 소화하느라 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임원으로 선출된 학생선수들 모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학업에 훈련까지 소화하느라 모여서 논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상반기 정례회에서는 모두 4개의 모둠으로 모여 '팀 케미스트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이 속한 학교운동부(팀)의 모습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모습들이었지만, 모둠별 멘토 교사들의 아이스 브레이킹 이후에는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자신있고 적극적인 모습들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팀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학생들은 팀의 화합을 위하여 고민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팀에 있는 '교란자' 즉 빌런들을 이야기 할 때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공감하는 모습들도 재미있었다. 1부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옮겨다니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네트워킹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서울의 학생선수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학생선수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했다. 종목별로 시즌도 다르고, 훈련 시간도 다르고 여러가지로 모이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 날 모인 23명의 학생선수들이 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학생선수들과 소통하기로 하였다. 학생선수들의 눈높이에서 학생선수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들을 모아서 교육청에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임원단 학생들이 직접 요즘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플랫폼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하였다. 괜히 페이스북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이들의 눈쌀이 찌푸려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아재들만 넘치는 곳에서 살아가는 꼰대가 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둘째, SNS 플랫폼에 학생선수들이 만든 콘텐츠를 직접 공유하기로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학생선수위원 모두가 각자 자신의 운동부로 돌아가서 스포츠맨십, 스킬챌린지, 스포츠 기술 팁 등을 주제로 짧은 영상 '숏 폼 영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총 25명의 학생선수위원위 2주 정도 단위로 영상을 제작하여 제출하면 임원단이 계정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정하였다. 모두 바쁜 일상이지만 가능한 적극적으로 숙제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셋째, 모둠별로 멘토 교사들과 함께 온라인 상에서 자주 소통하기로 하였다. 각 모둠은 서울을 4분면으로 나누었을 때 인근지역으로 묶어서 구성하였으며, 전체가 모이기 힘든 만큼 모둠별로 온라인으로라도 소통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모든 학생선수위원들이 모인 단톡방과는 별개로 모둠별 단톡방을 개설하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였다.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멘토 교사들과 함께 논의하기로 하였다.
넷째,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행사를 추진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학생선수들이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가르쳐준다던지 학교운동부 생활을 견학시켜준다던지 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실행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만, 학생들은 마음 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교육청 담당자인 내게 숙제를 남겼주었다.
불과 한 달 전에 처음 모였을 뿐이며, 하반기 정례회까지는 적다면 적지만 많다면 많을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 이미 학생들은 숏 폼 영상들을 만들어 공유하며 자신들이 했던 약속을 실천하는 중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학생선수들인데, 그동안 기회가 너무 부족했었나 싶기도 하여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모두가 자신의 본분인 학업과 훈련에 집중하느라 시간적 여유도 정신적 여유도 찾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7047250?sid=102
아래 5개의 짧은 영상들은 서울학생선수위원회 학생들이 만든 것으로, 서울학생선수위원회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이다. 학생선수들의 이야기는 연말까지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계속 공유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떤 콘텐츠들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