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동부가 학교 교육이라는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면
학교체육이란 무엇일까. 「학교체육진흥법」 제2조 제1호에는 “학교체육이란 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체육활동을 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문장이지만,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교사와 교육청 장학사 등이 중심이 되는 학교 교육 관계자들에게 학교체육이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체육활동을 의미한다.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되어 있는 체육 교과 수업, 일반학생들의 스포츠팀인 학교스포츠클럽 활동,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생건강체력평가 제도 등을 모두 포괄한다.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정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학생과 학생선수를 구분하기보다 모두 학생이라는 측면에 관심을 둔다. 학교운동부 정책은 체육 분야 진로교육의 심화된 부분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학교체육을 위기라고 표현할 수 없다.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를 통해 더 많은 일반학생들의 스포츠 문화 참여가 늘어나고 있으며, 체육 교원 역량 함양 및 체육 학습공간 개선 등을 통하여 체육 교과 수업 내실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한체육회를 필두로 하는 이른바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학교체육이란 '우수한 선수를 육성하는 학교 운동부 시스템'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체육이 위기라고 주장할 때 관심있는 지표는 학생선수 수의 감소와 학교운동부 운영교 수의 감소다. 학생의 절대적인 인원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학생 인원 감소는 학생선수 인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비인기 종목일수록 단체종목일수록 하나의 단위학교에서 학교운동부를 운영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학교운동부 운영에 사명감과 책무성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이 마음을 모은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기란 어렵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학교체육은 위기가 분명하다.
우리나라 선수 육성 시스템의 역사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스포츠문화를 중심으로 우수한 선수가 나타나는 구조가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국가 주도로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즉, 그동안 이 시스템은 학교라는 아주 안정적인 체계에 기대어 작동해 왔던 측면이 크다. 각 종목의 우수한 성인 선수는 각 종목별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운동부 육성을 위한 '체육특기자 제도'를 통해 자동적으로 공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와 인구 감소라는 시대적 현실이 융합되면서 이 시스템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문화를 즐기며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운동 선수의 삶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기존의 학교 운동부 문화는 아주 어린 나이의 학생에게 운동선수라는 삶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운동부 문화가 선수가 되고자 하는가 아닌가 중 양자택일을 강조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실제로 학교운동부가 모든 학생들에게 열려있었다. 중·고교 체육특기자 제도가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1972년 이전만 해도, 학교운동부는 단위학교의 모든 학생들을 위한 스포츠 문화의 중심이었다. 지금처럼 학생선수와 일반학생을 구분하는 즉 전문스포츠와 생활스포츠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예를 들면, 서울중학교 야구부라고 하면 서울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야구 종목의 팀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이 팀이 학생선수들로 구성된 전문스포츠 분야의 팀인지 일반학생들로 구성된 학교스포츠클럽 팀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학교운동부에 소속되어 운동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운동선수의 진로를 선택하지 않아도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학교체육진흥법」 제2조 제3호에 따르면 학교운동부란 “학생선수로 구성된 학교 내 운동부”를, 제4호에 따르면 학생선수란 “학교운동부에 소속되어 운동하는 학생”이나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른 체육단체에 등록된 학생”이다. 법률적 정의에 따르면 학교운동부에 소속된 모든 학생이 학생선수이기는 하지만, 학생선수가 해당 종목 단체에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교운동부에 소속된 학생선수가 해당 종목단체에 선수로 등록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학교운동부가 참가하는 전문스포츠 분야의 대회에는 선수로 참가할 수 없다. 흔히 이야기하는 엘리트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에는 참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일반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등에는 참가할 수 있다. 즉, 하나의 학교운동부 안에서 운동선수로의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과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는 학생들이 공존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학교 현장의 많은 체육 교사들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일반학생들의 스포츠 문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방과후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스포츠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진짜 스포츠 경기와 대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사가 직접 지도하는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학교 현장 교사들의 자생적인 노력을 교육청 단위에서 적극 지원하기 시작하였고, 교육부에서도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전국단위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시스템을 이루어냈다. 2013년에는 「학교체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법률적으로도 학교스포츠클럽 운영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서울 지역의 경우 매년 ‘서울특별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2024학년도 대회에는 모두 4만 8천 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참가하는 규모로 성장하였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 학교운동부 소속 학생선수 인원이 9천 명 정도 되는 것에 비하면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팀 스포츠의 교육적 효용성에 대한 공감대와 자녀의 건강한 문화로서의 스포츠가 학부모들의 인식 속에서도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교사들이 처음부터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교사들은 학교 안에 존재하는 기존의 학교운동부를 모든 학생들에게 개방적으로 운영하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새로운 체계를 만들게 되었다. 학교 안에 있지만 학교 내 다른 교육활동과는 다른, 마치 독립된 사설 학원처럼 별개의 체계로 여겨져 왔던 학교운동부 문화의 폐쇄성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학교운동부가 운동선수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을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학생들’로 간주하고 학교운동부 속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측면이 강했다. 학교운동부가 지도자와 학부모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 안의 전문적인 진로를 추구하는 사교육 집단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학생선수를 인생을 걸고 진지하게 훈련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투자해야 할 자원을 다른 학생들과 나누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느낌이었다.
교사들이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새로운 개념 안에서 많은 학생들이 질 높은 스포츠문화를 학교 안에서 즐겁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일한 학교 안에서 동일한 종목의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이 공존하기는 어려웠다. 단위학교의 한정적인 자원을 이중적인 구조로 운영하는 일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대가 변화하였다. 운동선수와 전문스포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모든 곳에 한꺼번에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이 몰아치고 있다. 인구 감소는 학생 수 감소로 이어졌고, 학생 수 감소는 학생선수 수 감소의 문제가 아닌 학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단위학교 범위 안에서 시장이 큰 인기있는 단체 스포츠 종목의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은 종목, 이른바 비인기 종목의 학교운동부는 더욱더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운동만 잘 하면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과거의 유인책도 더 이상 유효한 수단이 아니다.
학교운동부는 이렇게 다양한 현상이 복합적으로 융합되면서 점점 더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스포츠 분야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사회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자원이 집중되었던 학교운동부가 이대로 사라지도록 놓아두기에는 그 인프라와 경험적 자원이 너무나도 아깝다. 학교운동부가 해당 학교 학생들을 위하여 학교가 운영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을 고려하면, 학교운동부를 중심으로 학교 스포츠문화를 이어가는 방향으로 중흥기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학교운동부의 진입장벽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낮추어야 한다. 개방적인 학교운동부 문화가 필요하다.
학교운동부를 개방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지도 않다. 현행 법률과 학교운동부 지원 시스템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특별시교육청은 학교스포츠클럽을 융합하여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하였다. '학교스포츠클럽 융합형 학교운동부'는 이상적인 지향점이지만 현실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미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는 학교운동부도 있다. 이번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 참여하는 송곡고등학교 세팍타크로 학생선수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송곡고등학교는 체육 교과 중점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로, 일반적인 학생들 중 대학교 체육계열 학과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하여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경험적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체육 중점학급에 재학 중인 학생들 중 일부가 학교에서 운영하는 세팍타크로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고, 전문스포츠 분야로의 진로도 함께 탐색하면서 대한세팍타크로협회에 선수로 등록까지 하였다. 송곡고 세팍타크로 학생들은 올 해 10월에 경남 일원에서 개최되는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 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팀으로 참여한다. 이들 중 미래의 세팍타크로 국가대표 선수들이 배출될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운동부를 통해 이들이 양질의 교육 경험을 제공받고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m.sports.naver.com/general/article/477/0000517096
학교운동부, 체육특기자, 학생선수. 이 단어들은 그동안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보다 몇 십년은 뒤쳐진 문화와 각종 비위가 가득한 부정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앞에서 드러내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적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비난을 하는 분위기는 분명히 그랬다. 학교운동부는 그동안 일반학생들의 체육교육 내실화에 투자되는 자원과 비교하면, 교육 당국과 체육 분야의 많은 자원이 수십년간 집중적으로 투자되어 온 분야다. 따라서, 소수의 진로탐색을 위하여 너무 큰 자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논리로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운동부의 역사가 어두운 유산만을 남긴 것은 결코 아니다. 학교운동부는 수 십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적 지식과 유무형의 자산을 축적한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믿을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국가가 역량을 보증하는 교사로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받을 수 있다. 잘 운영되기만 한다면 해당 학교 재학생들을 위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학교운동부는 해당 학교 재학생을 위한 학교 교육의 한 분야라는 본질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운동부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학교운동부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