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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 수업을 통한 배움의 기록, 글쓰기를 통한 사색의 기록

by 김의진
글쓰기에서 문장을 바르게 쓰는 것과 글의 짜임을 배우고 주제를 담아내는 기술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 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온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은 글쓰기 수업, 즉 사람들이 주제의식을 가지고 글을 쓰고 함께 나누며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느끼고 생각했던 배움의 기록이다. 저자는 자유기고가로, 글쓰기는 그의 일이자 삶이다. 그의 관심사는 개인적인 차원의 감동을 넘어, 마음을 움직여 그 다음 행동에 이르게 하는 '감응하기'에 있다.




이 책의 작가는 글쓰기 수업의 선생님 역할을 오랜 시간 즐기며 수행했다.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글을 쓰는 능력을 길러주는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감응하는 능력을 길러주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기록이었다.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저자는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라고 하였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했다. 자기 고통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해져야, 글쓰기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사람을 수강생, 학생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학인(學人)'으로 부르며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저자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은 글쓰기 그 자체보다는 '합평(글을 여러 사람이 읽고, 의견을 주고 받는 비평 활동)'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합평을 통해 읽는 사람은 불쾌함 없이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듣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말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고 하였다. 합평을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서로의 말을 참조하는 공론의 장으로 보았다.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저자는 인터-뷰(inter-view)를 '마주하기'로 정의하였다. 온몸이 귀가 되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번역하고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의 가치와 아름다움' 그리고 '누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의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저자는 누군가와 글쓰기를 전제로 이야기하는 경험 그 자체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저자에게 글쓰기란 단순한 밥벌이 수단이 아니었다. 글쓰기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래서 글쓰기 경험을 어떻게 하게 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한 사람의 삶에 그렇게나 큰 의미를 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모습을 돌아보니 조금은 공감되는 측면도 있기는 했다. 과거에 한창 글을 많이 쓸 때가 바로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였다. 아무 글이라도 막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경험이 떠올랐다. 모두가 글쓰기를 통해 저자와 같은 성스러운 수준의 경험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는 큰 공감이 된다. 내 아이들이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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