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역사'라는 단어는 무언가 무겁게 다가온다. 정치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뭔가 거대하고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느낌이 든다. 학문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학창 시절 우리를 괴롭히던 "보기를 시대 순으로 정확하게 나열한 것은?"과 같은 어려운 시험 문제가 떠오르기도 한다. 반면에 친근한 옛날 이야기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를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으로 유명한 저자가 우리 나라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에 당신이었다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무언가 진지한 분위기의 책이었고,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 교사로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교육하고 이견이 없을 문제를 출제하던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글로써 마음껏 표현하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교사라는 신분이 아니기에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 저자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책의 구성 방법은 다른 역사책과 달랐다. 일반적인 역사책은 시대 순으로 진행되거나, 사건과 인물을 목차부터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명확하게 관심있는 부분을 찾아 읽기가 쉽다. 그런데 이 책은 각 파트별 제목이 질문이다. 예를 들면, '첫번째 질문: 삶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독립운동가 이회영, 김약연, 김구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구성하였는지, 아니면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던지면서 울림을 주고자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저자는 무겁고 진지한 책을 부담스러워하는 나같은 사람도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데는 성공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일반적인 정규 학교 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은 진부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관점과 해당 인물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적인 부분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었다. 이 책의 독자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까지 일반적인 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는 전제, 한국사 관련하여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내용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구구절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아도 되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듯했다. 독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책의 내용과 구성을 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례로 다가왔다.
을사오적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어떻게 했었는지를 회고하는 내용은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을사오적에게 시원하게 욕을 해 보라'고 한 후, "나중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는 교훈을 주고자 했던 장면의 이야기였다. 교사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모두 눈을 감아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 그게 지금 너희 미래다."는 식의 가벼운 접근은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패턴이다. 저자가 천상 교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질문이 남아있을까. 공무원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어떻게 했는가? 왜 그렇게 했는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공격적인 질문을 하기보다는,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방어해낼 수 있는 명확성과 객관적 논리를 세우는 삶이다. 한 마디로 재미없는 일, 비슷한 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질문을 하면서 기획하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일과 중 이런 업무의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현장의 교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할 때면 마냥 즐겁고 에너지를 받게 되는지 모르겠다. 학교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예전에는 그렇게 귀찮았던 소리가 아무렇게나 막 던지는 학생들의 질문이 다시 그리워진다.